관계의 온도

제발 니 감정은 니가 간수해

by 정오의 햇빛

며칠 전 성우 동아리 모임에 갔다.
모임의 주인이 어떤 인형극을 한 단체에서 공연하기로 했는데, 아무런 설명 없이 취소됐다고 했다. 아마 수입 문제일 것이다. 모임이 활발하지도 않고, 작품이 잘 팔리는 것 같지도 않았다. 거래처가 없다는 뜻일 테다.

그런데 그날 모임은 공연 취소에 대한 이야기로 거의 다 채워졌다.
주인은 괴로움과 분노, 억울함을 길게 쏟아냈다. 나는 그 모임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활동도 거의 없었다. 소속감 역시 크지 않았다. 그래서 중간중간 딴짓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듣고 있느냐”는 말을 들었다.
나는 듣고 있다고도, 안 듣고 있다고도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이야기가 지금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있는 이야기 같지는 않았다. 상황을 잘 알지도 못했고, 내가 의견을 낼 위치도 아니라고 느꼈다.

이야기는 이어졌고, 이번에는 다른 회원에 대한 험담처럼 흘렀다.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감정 없이 생각했다.
이건 이사장이 감당해야 할 일이다. 거래처를 만들고, 홍보를 하고, 유료 공연이 어렵다면 무료 공연이라도 기획해야 하는 것. 그건 역할의 문제다.

그래서 그렇게 말했다.
그랬더니 이사장은 자기가 이미 홍보를 하고 있고,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회원이 모이지 않는지 설명했다. 그러다 내게 홍보를 해달라고 했다.

나는 말했다.
직책도 없고, 역할도 없고, 프로그램도 모른다. 무엇을 가지고 어디에 가서 무슨 말을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그 말은 내게 아무 감정도 동반되지 않은 말이었다. 그냥 이사장이 들어야 할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나는 점점 반기지 않는 사람이 되어갔다.


당시에는 의아했다.
왜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자리에서 개인적인 괴로움을 이렇게 길게 풀어놓는 걸까. 왜 자신의 업무에서 오는 부담을 공동의 감정으로 나누려는 걸까.

지금 와서 보니, 나는 그 사람의 감정을 함께 받아주지 않은 것이었다. 공유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걸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그의 감정이고, 그의 역할에서 생긴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옆에 있던 사람은 달랐다.
아주 친절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었고, 끝까지 말하도록 허락했다. 오래된 친절이었다. 그 사람은 주인과 2년 동안 함께 호흡을 맞춘 사람이었고, 나는 아니었다. 나는 불편하지도, 안도하지도 않았다.

대화에 들어오라고 해서 들어왔고, 해야 할 말을 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느꼈다.
내 말이 불편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자기가 원하는 말이 아니어서 불편하다면, 애초에 끌어당기지 말았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상처받지 않았다.

주인에게 애정도 없고, 이 모임에 간절하지도 않았다. 다만 헷갈렸다.
어디까지가 공유이고, 어디까지가 계약이며, 어디부터가 거절인지.


그날 주인이 자신의 힘듦을 말할 때, 나는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듣고 있느냐”는 질문에 안 듣고 있다고 말했다. 아주 안 듣고 있지는 않았지만, 나는 내 시간을 들여 이 자리에 왔고, 그 사람은 자기 볼 일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게 나의 방식의 표현이었다.

이사장은 차갑게 느껴졌다.
처음 본 순간부터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받았다. 너무 단정적인 해석 같아서, 나는 그 감각을 나의 트라우마일 거라 생각했다. 과민한 반응이라고 밀어냈다. 하지만 그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매번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번에도 내 문제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관계가 깊어지지 않는다는 감각은 분명하다. 그래서 결론을 단순하게 만든다. 계약 기간 동안만 구성원으로 존재하면 된다.


그 사람은 자신의 상처를 자주 말한다.
사람들이 떠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의견이 다른 것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지. 1년쯤 함께하다 떠나는 사람 하나하나가 큰 상처라고 했다.

나는 다시 말했다. 그건 주인이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고. 사람들은 오고 가고, 의견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내 말은 그 사람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말이었을 것이다.
“모임을 운영하려면 감당해야지.”
“그건 네 몫이야.”
나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시간이 지나니 굳이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미 마땅치 않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걸 감추지 못한 것 같다.


며칠 전 메시지 하나가 왔다. 열어보지 않았다.
아마 이런 내용일 것이다.
나는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다음 모임에 오지 말아 달라는 정중한 부탁의 말일 것이다.

나는 일부러 보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나는 그 사람의 상처를 보호할 이유도 없고, 일부러 건드리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는 후하거나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다.
그 사람은 지금 그런 나를 만났다.


글을 쓰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내가 한 말이 틀린 것은 아니라는 것. 다만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언어였다는 것.

그리고 그 견딜 수 없음은 내가 책임질 몫이 아니라는 것.

나는 누군가의 상처를 고쳐야 할 의무도, 떠안아야 할 책임도 없다.


이건 관계능력의 부재가 아니라 관계를 원치 않는 사람의 태도일 것 같다.

계약된 관계에 끌려가고는 있지만 최소관계이상은 맺고 싶지 않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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