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을 표현할 줄 모른다.
나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기뻐하는 순간에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
환호하거나, 눈이 커지거나, 몸이 먼저 움직이는 그런 장면에서 나는 늘 한 발짝 떨어져 있다.
“아, 그렇구나.”
대부분의 일은 거기서 끝난다. 감정이 아니라 인지다.
어린아이들이 별것 아닌 일에도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을 볼 때면 늘 의아했다.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지고, 온몸이 먼저 반응하는 그 기쁨을 나는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지금도 그렇다.
필요할 때는 기뻐하는 표정을 연기한다. 그게 사회적으로 안전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기쁜 일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기쁨을 공유한 기억이 없다.
스무 살 무렵,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슴이 펄쩍 뛰었던 순간이 있다.
아주 어려운 시험을 치르고 취업에 합격했을 때였다.
합격자 명단이 벽보로 붙어 있었고, 내 이름이 맨 위에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 번 펄쩍 뛰었다. 그게 전부였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누구에게서도 축하를 받지 않았다. 그 순간은 나 혼자만의 사건으로 남았다.
그 이후로는… 기억나는 기쁨이 없다.
결혼할 때도, 아이를 낳았을 때도, 딸이 결혼했을 때도 나는 기뻐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기쁨이 내 안에서 솟구친 적은 없는 것 같다.
지금 이 이야기를 하면서 갑자기 마음이 무너진다. 눈이 뜨거워지고, 숨이 막히고, 목구멍이 안쪽으로 말려 들어간다.
이상하다.
나는 늘 이렇게 살아왔는데 왜 지금에서야 이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처럼 아플까.
생각해 보니 기쁨만이 아니라 모든 감정을 나는 공유해 본 적이 없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나는 크게 슬프지 않았다. 대신 오래 괴로웠고, 오래 그리워했고,
오래 죄책감 속에 혼자 머물렀다. 슬픔을 누군가와 주고받지는 못했다.
나는 감정을 혼자서만 처리해 왔다. 지금, 나는 여기 있다.
울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목구멍은 여전히 조여들고 눈은 아프지 않은데 눈물이 흐른다.
그제야 알겠다.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 앞에서 감정을 말하고 있다는 걸.
그 누군가는 결국 나 자신이다. 나는 나에게도 내 감정을 말해본 적이 없었다.
오늘 아침, 유튜브에서 아이들이 선생님의 임신 소식에 환호하는 장면을 보았다.
아이들은 임신이 뭔지도 모를 텐데
왜 그렇게 기뻐할까.
아마도 그건 정보가 아니라 감정이 전염되는 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기쁨이 “기뻐해도 되는 상황”이라는 걸 아이들은 머리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배웠을 것이다.
나는 달랐다. 누군가의 기쁨이 나에게 건너온 적이 없었고 내 기쁨이 건너갈 자리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늘 세상의 사건을 이해했지 세상의 감정 안에 들어가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오늘,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처음으로 나의 감정에게 말을 걸었다.
“그동안 혼자였구나.”
아직 기쁨을 느끼는 법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게 되었다.
감정은 느껴야 하는데 처리만 하고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