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이 싸인 나.
포장지에 싸인 물건을 보면,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요즘은 그것을 ‘언박싱’이라고 부른다. 어떤 사람들은 그 언박싱의 기쁨을 위해 쇼핑을 한다. 배달되어 오는 물건은, 사실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산타 선물이다.
필요하든 필요하지 않든, 우리는 그 기쁨을 맛보기 위해 물건을 사고 자신이 산 택배를 받으면서 기대한다.
그런데 어떤 택배는 언제 주문했는지 기억도 안 나고 포장지가 너무 단단해서,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풀기도 어렵고, 두렵다. 풀고 싶지만 방법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 안에는 아주 혐오스러운 것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 포장지 안에 있던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포장지를 조금씩 벗길 때마다 드러나는 나의 모습은 처참하고, 슬프고, 가엾다. 도리어 다시 포장해 밀어 두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포장지는 낡고 찢어져서 더 이상 감출 수 없다. 드러난 나를 온전히 바라보게 된다.
그 순간, 마치 내 삶에서 가장 원대한 일을 해낸 듯 개운하고 감동스럽다.
삶은, 자기가 누구인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끝난 뒤에야 시작된다.
질문이 끝나기 전의 삶은, 삶을 연출하는 삶이 아니라 모방하는 삶이다.
모방하는 삶에도 희로애락이 있고 생로병사가 있지만, 그것과 창조적 삶의 차이는 ‘밀도’에서 나타난다.
공허함과 충만감, 과제를 마쳤다는 의무와 피로, 그리고 이제 내가 내 삶을 창조한다는 희열.
그 차이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천국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천국의 필요를 느낄 수 없는 것처럼.
결국, 알아야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경험할 때, 삶은 비로소 나의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