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돌담에는 트멍이 있다. 트멍은 틈의 제주사투리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에게 닿기 위해 하는 행위다. 솔직하게 자신과 이야기하고, 타인의 눈과 자기 검열 없이 자유롭게 내면을 써 내려가는 일이다. 글은 나만의 은밀한 공간에서 시작되지만, 동시에 존재를 좌표화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사라지는 순간에도 현재의 좌표를 남기고, 그 좌표 위에서 존재는 숨 쉬며 타인과 만나게 된다.
글쓰기를 취미로 여기지 않고, 직업으로 삼는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언제 글을 쓸 것인지 시간을 정하고, 일상과 감정, 삶의 구조에 충실해야 한다. 글쓰기는 단순히 문자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존재를 번역하는 행위다.
늑대소년이 처음으로 소녀에게 “가지 마”라고 말했을 때, 말하지 못하던 존재가 비로소 소년이 된 것처럼, 글도 존재가 자신의 마음을 담아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살아난다.
그림과 글은 서로 다르지만, 글은 그림과 닮았다. 글은 문자로 그리는 그림이다. 완성된 그림이 아니라, 독자가 문자를 따라 머릿속에서 그려나가는 그림이다. 화가가 돌담의 틈과 바람, 풍경의 말을 번역해 그림을 그리듯, 글도 경험과 감각, 존재의 울림을 번역한다.
글을 읽는 독자는 그 안에서 자기만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글이 독자에게 닿을지, 메아리처럼 돌아올지는 작가의 몫이 아니다.
우리의 인식에는 저마다의 돌담이 있다. 제주의 돌담은 경계를 나누고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이지만, 그 트멍으로 바깥을 보고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완벽히 견고한 돌담은 바람에 견디기 힘들고, 트멍 없는 돌담은 자폐와 같다. 돌담 가까이에 눈을 붙이고, 트멍을 통해 세상을 관찰할 수 있다면, 돌담을 허물지 않아도 바깥의 풍경과 공기를 만날 수 있다. 나는 돌담이 아니라, 돌담 바깥을 글로 쓰고 싶다. 그 밖에는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다.
좋은 글은 내가 느낀 감동을 독자에게 전할 수 있는 글이다. 글을 오래 생각하고 다시 읽으며 의미를 더듬어야만 이해되는 글도 있지만, 글은 독자 속에서 스스로 발화할 수 있어야 한다. 글에 질감과 색감, 움직임을 담아 독자의 마음에서 울림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글쓰기는 존재와 세계, 타인과 자신을 잇는 행위이며, 동시에 나를 발견하고 이해하는 과정이다.
글쓰기는 내 존재와 세상을 기록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나를 넘어 독자와 세계를 연결하는 장치다. 글은 존재의 또 다른 모습이며, 내가 보고 느끼고 경험한 세계를 세상과 나누는 방식이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나만의 돌담 가까이에 서서, 트멍사이로 바깥을 보고, 그 풍경과 바람을 글로 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