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이제 그만

by 정오의 햇빛

나는 어떤 일을 하다가 문득 멈춘다. 아, 여기까지다.

이상하게도 그 말은 늘 늦게 온다. 사람들이 보통 멈추는 자리보다 훨씬 뒤에서.

그 지점은 적당한 선이 아니다. 즐기거나 루틴으로 돌릴 수 있는 수준도 아니다.

이미 골수에서 힘을 끌어다 썼고, 미래의 에너지를 당겨 쓰고, 나를 견딜 수 없을 만큼 채찍질한 뒤에야 비로소 도착하는 자리다.


전문가가 되기 직전. 혼자서는 더 이상 굴릴 수 없는 구간. 그 이후로 가려면 시스템과 후원,

타인의 시선과 구조가 필요한 단계. 대부분의 사람은 거기까지 가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늘 그 문 앞까지 혼자 간다. 그리고 그제야 말한다. 아, 여기까지다.

그 말은 포기가 아니다. 그만하면 됐다는 위로도 아니다. 이 이상 가면 내가 사라진다는

생존에 가까운 감각이다. 무서운 지점이다.


돌이켜보면 늘 그랬다. 결혼도, 자식과의 관계도, 어떤 배움과 취미활동도,

돈을 버는 일도. 아쉬움이 남지 않을 만큼 갔다.

더는 미련이 생기지 않을 만큼 지긋지긋해질 때까지 버텼다.

그래야만 돌아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 웃긴다.

남들은 삶을 길게, 편하게, 즐겁게 가려고 하는데 나는 팽이를 돌리듯 산다.

팽이채를 휘두르며 더 빨리 돌라고 하고, 가장 빠르게 도는 순간

간단히 팽이를 집어 들고 돌아선다.

나는 팽이를 빠르고 견고하게 돌리고 싶었던 게 아니다.

나도 팽이를 돌릴 수 있는지 알고 싶었던 것 같다.

팽이를 돌리면서 노는 건데, 팽이를 돌릴 수 있나를 왜 그렇게까지 알고 싶었을까.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아마도 거기까지 가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없어져도 되는 존재라는 말을 어딘가에서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 직접 말하지 않았어도 삶이 그렇게 가르쳤을 것이다.

끝까지 가야 인정받고, 탈진해야 증명되고, 형태가 남지 않을 때까지 굴려야

비로소 놓아도 된다고.


그래서 나는 늘 혼자서 어두운 밤에 바위를 굴렸다. 누가 보지도 않았고,

누가 멈추라고 말해주지도 않아서 밤새도록 굴리다가 몰래 내려놓고 돌아오곤 했다.

바위가 닳아 사라져야 끝낼 수 있었던 걸까.


지금에서야 조금 슬퍼진다. 아무도 없었구나. 그래서 그렇게까지 갔구나.

글쓰기도 어쩌면 그렇다. 혼자서 가능한 일이라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

말려줄 사람도, 끝을 정해줄 구조도 없으니까.


그래도 이제는 안다.

내가 “여기까지다”라고 말하는 순간은 게으름도, 변심도 아니라 존재를 되찾는 순간이라는 걸.

너무 오래 수행자가 아니라 수형자로 살았다.


이제는

증명하지 않아도, 끝까지 가지 않아도, 탈진하지 않아도 존재해도 되는 자리로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 증명할 수 없어져서 돌아올 수밖에 없기도 하다.


이번에는 바위를 내려놓고 집으로 가도 되는 지점에서 멈춰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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