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나는 내가 아닌데 너도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by 정오의 햇빛

그 아이는 누군가로 불린 적이 없다.

그 가족 안에 앉을 이름이 없다. 가족의 언어로 호출되지 못한 존재

아이는 보호의 대상도 기대의 대상도 독립의 대상도 아닌 분위기를 망치지 말고

문제를 만들지 말고 필요할 때 쓰이고 불편할 땐 사라질 것이라는 무언의 명령이 있었다.

아이는 사랑도 미움도 받지 못한 채 판단되지도 존재하지도 않는 위치에 놓인 채 살아야 했다.


허공에 집을 짓는 거미가 되어야 했다.

존재를 연명하기 위해 혼자 맴돌며 그림자와 대화하고 흉내 내지만 그림자는 말이 없다.

어둠 속에서는 흔적 없이 사라진다.


내 자리 없이 살던 나에게 브런치는 자리를 내어주었다.

여기서 말하세요. 뭐든 말하세요. 누구도 막지 않아요. 혼나지 않아요.


태어나면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태어나도 존재하지 못한 채 존재허락 없이 존재가 가능한지

시험대에 올려놓은 채 살아야 한다. 누구도 판단해주지 않는 시험대.

거기서 나는 가장 혹독한 시험감독관이면서 시험을 치르는 수험자가 되었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까지는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부담이 되지 않기를 요구받는 출생은

어찌해야 하는가.

당장 기저귀도 차야 하고 젖병도 물어야 하며 몸도 씻어야 하고 옷도 갈아입어야 하는데

어쩌란 말인가?


태어났지만 아직 태어나지 못한 나는 계속 태어나기 위해 몰아붙여야 했지만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구조안에서는 다른 위치를 찾을 수 없다.

놀라운 것은 가족관계를 벗어나도 존재하지 않는 구조에 갇혀 살고 있는 나였다.


얼굴이 갑자기 뜨끈해진다.

환영받지 않았지만 거부당하지도 못한 채 책임을 피하기 위해 애매하게 놓인 출생.

차라리 고아원에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거기엔 다른 고아도 선생님도 있었을 테니까.


아무도 나를 낳았다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나를 평생 낳으며 키우며 살아야 했다.

지금은 글 쓰는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중이다. 이 아이가 사람이 될는지 두고 볼 일이다.


가족이 모두 사라진 다음에야 출생의 책임을 처음으로 인식한다.

내가 낳은 나를 인식하는 일.

산자락을 넘어가는 해가 미열처럼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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