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감상문
영화를 보면서 도무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지루했고, 졸렸고, 솔직히 말하면 처음부터 탐탁지 않았다.
중국 영화라는 사실도 마음에 걸렸고, 싼 표를 줘서 보긴 했지만
영화는 그래도 고르는 게 맞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도 그냥 봤다.
지금은 모르지만, 언젠가는 의미가 올 거라는 이상한 믿음이 있었다.
하루쯤 지나야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빨리, 영화를 보는 도중에 의미가 도착했다.
한 시간 반을 졸다시피 보고 나서 마지막 삼십 분쯤, 영화가 갑자기 환해졌다.
아, 이건 엄청난 이야기구나.
아, 이건 아주 정확한 상징이구나.
이 영화는 두 개의 세계를 보여준다.
중력으로 나뉜 세계.
우일구는 밝고 질서 정연하고 풍요롭다. 2026년의 서울 같다.
장년구는 중력이 약해 쇠사슬을 차야만 하고,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고,
위험과 불안, 통제와 감시 속에 있다. 1960년의 서울 같다.
그리고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우일구에서의 하루는 장년구에서의 일 년이다.
그 설정을 보면서 나는 갑자기 알게 되었다.
이 영화가 내 삶의 경험을 너무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걸.
나는 암 수술을 했다.
그 수술이 내 삶을 바꾸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바꾸었는지는 정확히 몰랐다.
그저 “이전과 이후가 다르다”는 느낌만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수술 이전의 삶에서 삼백육십오일은 수술 이후의 하루와 같은 무게였다.
수술 이전의 삶은 항상 위험했고 불안했고 쫓기고 훔치고 폭행당하고 실수 없이 버텨야 하는 노동의 연속이었다.
벗어날 수 없고 건너갈 수 없는 쪽이 존재하는 삶이었다.
수술은 그 중력 벽을 통과하는 일이었다.
불타고 죽을 수도 있고 어마어마한 파도를 건너야 하는 일.
중력벽을 통과한 이후의 삶에는 더 이상 걱정할 게 없었다.
문제 될 것도 없었다.
세상은 질서 정연했고 반짝였고 시간은 더 이상 삶의 기준이 되지 않았다.
나는 이제 칠십을 사는 것도 팔십을 사는 것도 아니다.
하루를 산다.
그냥 하루를 산다. 그 하루가 끝나면 그건 그걸로 끝이다.
이 영화는 내가 어렴풋이 느끼고만 있던 것들을 이것은 이것이다, 하고 정확하게 재서 보여주었다.
감정이 아니라 수치처럼. 개념처럼.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재미있다거나 지루하다거나 그런 말들은 맞지 않는다.
이건 영화 감상이 아니라 내 삶의 차원이 어디에서 어디로 옮겨졌는지를 확인한 경험이었다.
살면서 나는 공유할 수 없는 감정을 많이 겪었다.
공유할 수 없는 반짝임, 번뜩임. 말해도 흘려지고 무시되고 무관심 속에서 사라지는 경험들.
그러면서 나는 점점 그 사람들과 비슷해졌던 것 같다.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이 가치를 갖고 있지 않다고 믿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흘려보낼 수가 없었다.
한 줄 쓰고 지우기에는 이건 너무 컸다.
그래서 그냥 남긴다.
누가 이해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 있을까. 사람들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는 있어도
어차피 대화하지 않는다.
그냥 읽고 지나갈 뿐이다.
이 글은
이해를 구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내가 여기까지 왔다는 기록이다.
중력 벽을 통과한 이후의 삶은 설명되지 않는다.
다만 살아진다.
그리고 나는 이미 우일구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