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상실
어릴 적 기억이 거의 없다.
애기 때도, 초등학교 때도, 기억은 거의 비어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야 선생님 얼굴이, 친구 얼굴이 조금씩 떠오른다.
고등학교 담임도 기억난다.
그렇다면 초등학교 때까지의 기억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도 나를 봐주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보다 먼저, 나는 나를 보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았던 것 같다.
어릴 때는 내가 누구인지 몰랐다.
자기라는 인식이 없으니까, 내 존재를 붙잡을 수도, 기록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때의 나날들은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 속에 남지 않는다.
그냥 흘러간, 없는 날들이다.
아무도 나를 봐준 시선이 없었다는 것이 기억 없음의 이유이다.
중학교 때 조금씩 기억이 남기 시작한 이유는, 그제야 내가 타인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고, 누군가와 눈을 맞추며 웃기도 하고 말을 하기도 했다.
그 속에서 나는 나를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 있고, 내가 이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나는 어느 날, 중학생이 된 순간부터 존재하기 시작한 셈이다.
그전까지의 나는, 스스로를 보지 못했고, 타인에게도 비치지 않은, 조용히 사라진 존재였다.
그리고 지금, 내가 글을 쓴다.
내 하루, 내 생각, 내 마음을 붙잡기 위해서.
그때 받지 못했던 시선과 관심을 이제 스스로에게 건네면서, 조금씩, 나라는 존재를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