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라는 말로 부당함을 강요하는 사람
이해심 없는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나는 정말 이해심 없는 사람일까?
전남편에게 나는 분명 이해심 없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문득, 남북한이 통일되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각자 체제로 살아가는 것이 서로에게 더 바람직한 삶이 아닐까?
타인은 나에게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 양보할 수 있는 가장 근접한 지점에서 합의를 원할 뿐이다.
합의는 서로에게 이해를 구할 이유가 없다.
타협이 결렬되면, 각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나에게 이해를 구하는 사람들은 오직 원가족뿐이었다.
그들은 말로 이해를 요구한 적이 없다.
그저 존재 자체로 내 삶에 스며들었다.
마치 공기처럼, 물처럼 낮은 곳으로 흘러내렸다.
선택의 여지도, 막을 수도 없었다.
문틈으로 스며드는 일산화탄소처럼 자연스러웠다.
이해의 영역도, 강요의 영역도 아니었다.
아침이 되면 해가 뜨듯, 너무 당연해서 어찌할 수 없었다.
그 구조 안에서 나는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결혼 후, 나는 더 이상 그 자연스러움에 녹아들 수 없었다.
삶은 구렁이 담넘어가듯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예전처럼 그냥 흘려보낼 수 없었다.
이제 이해를 구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이해를 해야 하는 자리에 서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서로 이해해야 할까?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부당하게 대하지 않는 것이 최선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