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기계

쉬지 못했던 이유

by 정오의 햇빛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이상한 변화가 생겼다.


감각이 조용해졌다.

글을 쓰기 전에는 눈도 귀도 입도 쉬는 법이 없었다.
부엌에서 일할 때는 유튜브를 틀어야 했고 샤워를 할 때도 핸드폰을 들고 들어갔다.

귀는 늘 무언가와 함께였다.


하지만 정말 들었던 걸까.
들음이라기보다 자극에 대한 반응이었는지도 모른다.


왜 나는 그렇게까지 바빴을까.
한 가지 일에 감각을 두지 못하고 늘 여기저기 흩어놓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잠시라도 멈추면 어떤 생각이 올라올까 봐 두려웠던 건 아닐까.


어릴 적 장면 하나가 떠오른다.

여덟 살 무렵, 첫 조카가 태어났다.
아이는 투명할 만큼 맑았다.
하지만 자라면서 몸을 가누지 못했다.
다운증후군이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그 아이를 “똥기계”라고 불렀다.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이 더 무서웠다.


나는 그 아이가 아니라 그 말을 듣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두려웠을까.

혹시 쓸모없어 보이는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나를 움직여야 한다고 믿었던 건 아닐까.

생산하지 않으면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도 그렇게 불릴까 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눈과 귀를 닫는 연습을 했다.

밖의 소리를 줄이자 안의 소리가 조금씩 들렸다.

산책을 하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생강 껍질을 벗기다가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그날 알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언가를 더 듣는 일이 아니라 그동안 피했던 것을 듣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조카를 향한 그 한 마디가 내 삶을 얼마나 오래 흔들었는지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트라우마는 나에게 직접 일어난 일만을 말하는 걸까.

남의 상처를 매일 바라본 일도 내 안에 금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가슴 밑바닥에서 저울추 하나가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나는 이제 쉬어도 되는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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