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좌표는 이동 중
요즘 시대를 살면서 SNS가 왜 이렇게 강력한 자기표현의 매체가 되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예전에는 아무나 자신의 삶을 기록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어느 정도의 자기 진술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시간을 남길 수 있었다. 기록은 곧 능력이었고, 기록하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었다.
그 다음에는 카메라의 시대가 왔다. 사람들은 삶의 한 장면을 정지된 이미지로 붙잡기 시작했다. 앨범이 생겼고, 기억은 종이 위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래도 여전히 기록에는 과정이 있었고, 약간의 수고와 기다림이 필요했다.
지금은 완전히 다른 국면에 들어와 있다. 많은 포털과 플랫폼이 개인에게 글을 쓸 공간을 열어 두었지만,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긴 글로 타인의 삶을 엿보지 않는다.
대신 지금 이 순간 그가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먹는지, 어디에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글이 아니라 방송으로, 문장이 아니라 눈빛과 몸짓으로 삶이 전달된다.
이 시대에는 개인이 곧 하나의 브랜드가 된다. 예전에는 모델이나 배우가 특정한 영역에 속한 사람들이었다면,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이 기획자가 되고 제작자가 되고 크리에이터가 된다. 누구나 카메라 앞에 설 수 있고, 누구나 자신의 일상을 콘텐츠로 만들 수 있다.
절대적인 능력치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표현하려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타인의 감각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에 대한 감각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글을 쓴다는 일은 점점 더 느리고 고집스러운 행위처럼 느껴진다. 마치 막대기를 비벼 겨우 불씨를 만들어 내는 일과 비슷하다. 화면은 즉시 반응하고 영상은 곧바로 소비되는데, 글은 여전히 시간을 요구한다. 쓰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읽히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글을 쓴다. 빠르게 사라지는 신호들 사이에서 오래 남는 어떤 형태를 붙잡고 싶은 마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시간의 세계가 존재를 증명해 준다면, 글은 그 존재가 지나간 자리를 조용히 드러낸다.
불씨를 만드는 일은 번거롭고 더디다. 하지만 한 번 붙은 불은 생각보다 오래 간다. 글을 쓰는 일은, 어쩌면 그 느린 불을 끝내 포기하지 않겠다는 원시적인 선택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 아니라, 지금 내가 여기 있다는 감각을 확인하는 것 아닐까.
그 말은 역설적으로, 존재한다는 느낌이 희미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존재했음’을 남기고 싶어 했다면, 지금은 ‘존재하고 있음’을 남기고 싶어 한다. 그렇게 본다면 사람들의 시선은 과거에서 현재로 옮겨온 셈이다.
조금 전까지 내가 존재했었어, 에서 지금 내가 여기 존재하고 있어, 로.
그 다음 문장은 이미 시작된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면 나는 저곳에 존재할 거야.
아마 우리는 이미, 증강된 현실 위에서 자신의 존재 좌표를 계속 업데이트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