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감의 정점이 아니라 불쾌감과 쾌감의 교차지점에 있는 것 같다.
나는 예전에는 행복을 기쁨의 정점, 즉 ‘최고조의 순간’에서 찾으려고 했다.
더 멀리 가야 행복하고, 더 많은 것을 가져야 행복하며, 더 높은 목표를 달성해야 행복하다고 믿었다.
스키를 배우고, 수상 스키를 타고, 스노우보드와 스노우스키를 반복하며, 몸이 망가질 만큼 노력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폭발적인 쾌감을 통해서만 나는 힘든 일상—설거지, 청소, 밥 준비—을 견딜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느낀 작은 기쁨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그러나 오늘 아침 깨달은 것은 달랐다.
행복은 피크가 아니라 교차점에 있다는 것. 큰 기쁨과 낮은 기쁨, 우울과 희열, 에너지의 고점과 저점 사이를 교차하는 순간이 바로 행복이라는 것이다. 삶을 극단으로 끌어올리고 내리는 과정에서 얻는 극적인 쾌감보다, 일상 속 작은 만족과 ‘할 수 있음’이 주는 안정이 더 깊은 행복을 만든다.
사람마다 행복을 느끼는 방식이 다르다. 내 친구는 혼자 있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고, 평온함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차례차례 쫓아가는 삶에서 만족을 느낀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놀라웠다. 나에게는 혼자 있는 시간조차 채워야 할 재미와 성취, 에너지가 필요하다. 설거지와 청소조차 내 삶에서 의미 있는 기쁨이 없으면 마지못해 하는 일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깨달음은 성격이 선택이 아니라 환경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누군가를 보고 ‘그 사람은 재밌어’라고 느낄 때, 그것은 그 사람의 성격이라기보다 그 사람이 경험한 환경과 삶의 방식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환경이 사람을 만들고, 그 환경 속에서 어떤 즐거움과 에너지를 얻는지에 따라 삶의 패턴이 달라진다.
나는 예전에는 기쁨의 피크를 향해 몸을 혹사했다. 그러나 이제는 낮은 수준의 행복에서도 기쁨을 자주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높은 기쁨을 추구하면 극단과 극단 사이를 오가야 하므로 결국 몸과 정신이 소모된다.
낮은 행복 상태에서 오는 작은 만족은 몸과 마음에 부담을 주지 않으며, 일상 속 지속적인 안정감을 준다.
즉, 행복은 작은 기쁨의 교차점에서 찾아야 한다. 하루하루의 소소한 만족과 성취 속에서 삶의 균형을 찾는 것이 행복이라는 깨달음이다.
내 삶을 돌아보면, 나는 ‘경차 몸’으로 ‘그랜저 급’의 속도와 목표를 추구하며 살아왔다. 무리한 목표와 극도의 쾌감을 향한 삶 속에서 몸은 망가지고, 결국 한계에 부딪혔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알게 되었다.
몸과 마음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낮은 행복 속에서 느끼는 행복이 지속가능한 안정과 행복을 준다는 사실을.
스키, 테니스, 카이트서핑 등 폭발적인 즐거움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안다. 작은 일상 속에서도 교차점의 행복을 경험하며, 나는 삶을 조금 더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