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하게 되려나 궁금했는데 바로 오늘.
오늘부터 운동을 하기로 했다.
오래전부터 해야 한다는 생각은 계속 있었다.
그런데 생각만으로는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몸이 움직이려면 어떤 순간이 와야 한다. 오늘이 그 순간이었다.
이 몸으로 계속 살면 결국 허리에 탈이 나겠구나.
허리에 탈이 나면 그때는 꼼짝도 못 하겠구나.
이건 내가 이미 한 번 겪어봐서 아는 종류의 예감이다.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종류의 한계 신호.
그 지점을 오늘 딱 밟은 느낌이 들었다.
며칠 동안 비가 계속 오다가 오늘은 해가 났다. 반짝이는 햇빛은 아니었지만 세상이 한 톤 밝아졌다.
아, 오늘은 움직일 수 있겠다 싶은 그런 밝기였다.
아침에 크런치를 4분 했다.
AB 슬라이드를 쉰 번 했다.
훌라후프 백 번을 기본 메뉴로 삼기로 했다.
결국 이 느낌이 와야 사람은 무언가를 시작한다. 곧 멸망의 날이 닥칠 것 이라는 예감.
몸이 한계에 도달한 건 사실 아주 오래전이었는지도 모른다.
잠자리에서 몸을 뒤척일 때, 어쩔 수 없이 코어 근육을 써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마다 온몸이 아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서 있거나 앉아 있을 때는 별다른 불편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그 상태로 계속 살았다.
가만히 있을 때 괜찮으면 사람은 쉽게 안심한다.
하지만 누워서 몸을 뒤척이지 못할 정도라면, 뒤척이는 게 버거운 상태라면,
그건 생각보다 꽤 심각한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시간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지나갔다.
AB 슬라이드를 밀어내고 다시 끌어당기면서 생각이 하나 바뀌었다.
인간이 완전해지고 싶어서 괴로운 걸까.
가만히 보니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사람은 완전해지고 싶은 게 아니라, 자기 안에서 들려오는 비난의 소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잘할 수 있었는데 왜 그랬냐고, 그때 왜 그렇게 했냐고, 조용할 틈 없이 이어지는 내면의 야단.
그 소리가 커질수록 사람은 점점 불안해지고, 그 소리가 잦아들 때 비로소 조금 편안해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어쩌면 자기 비난을 멈추는 일인지도 모른다.
자기 비난을 멈추려면 결국 자기의 한계를 인정하는 데까지 가야 한다.
나는 여기까지의 사람이구나. 지금의 나는 이것밖에 할 수 없었구나.
그걸 인정하는 순간, 내면의 목소리는 조금 부드러워진다.
행복은 어쩌면 외적인 어떤 조건의 충족이 아니라 내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조금 더 사랑스러워지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할 때, 사람은 바깥에서 인정과 사랑을 더 세게 찾게 되는 것일지도.
물론 사람은 물질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하루 스물네 시간 자기 비난의 목소리 안에 갇혀 사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큰 고통이다.
오늘은 운동을 했다.
몸을 움직이는 동안만큼은 내 안의 소리가 조금 조용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 소리의 내용이 바뀐 것 같기도 하다.
왜 안하는거냐고? 왜 못하는 거냐고? 언제 할 거냐고 종주먹을 질러대던 목소리가
잘했다고. 그렇게 계속 하라고. 이제 안심이 된다고. 진작 하면 좋았겠지만 지금도 괜찮다고.
더 이상 견딜수가 없어져서 ...
운동을 시작했다.
아. 모가지 아파.
누워서는 뒤척이는게 힘들고
서서는 모가지 돌리는게 힘들어서 눈동자만 돌리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