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나 봅시다.
나는 무엇을 그렇게 불만스러워했는가?
나는 무엇이 그렇게 불만스러웠을까.
가장 먼저 떠오른 답은 나 자신에 대한 불만족이었다.
요즘 들어 체력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이 몸으로 느껴진다.
일어설 때 힘이 들고, 움직이기 시작할 때 몸이 불안하다.
계단 몇 개만 만나도 몸이 먼저 긴장한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노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
다른 하나는 하체 근력 운동을 통해 몸의 기능을 보완하는 것.
받아들인다면 마땅히 불만스러울 이유가 없고, 운동을 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을 하고 있으니
역시 불만스러울 이유가 없다.
그런데 나는 그 둘 중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개선하려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 상태에서 나는 몸의 근력 약화를 불만스러워했다.
가만히 보면 나의 불만은 꽤 정확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의 불만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와, 그것을 바꾸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비롯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제는 조금 달랐다.
하루 종일 비가 와서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아주 약간의 운동을 했다.
복근 운동을 조금, 스쿼트를 조금. 그리고 찬물 샤워를 두 번 하고 하루를 보냈다.
대단한 변화는 아니었다.
그런데 분명히 다른 점이 있었다.
하루를 무사히 건너왔다는 느낌. 내가 해야 할 일을 아주 조금이나마 했다는 느낌.
그래서 오늘 문득 이런 생각에 닿았다.
내가 그동안 말해왔던 자극이 없다, 지루하다, 만날 사람이 없다, 이야기할 대상이 없다…
이 많은 불평들이 혹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데서 생긴 외부로의 투사였던 것은 아닐까.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야기는 단순해진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면 외부를 향해 흘러갈 불만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비가 오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고, 일상이 단조로운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고,
지금 만날 사람이 없는 것도 어쩌면 하나의 환경일 뿐이다.
문제는 그 환경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혹은 무엇을 하지 않고 있는가에 더 가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직은 단정할 수 없다.
어제는 단 하루였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할 일은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지켜보는 것이다.
몸을 조금 더 움직여 보고, 그때 마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조용히 관찰해 볼 생각이다.
다시,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