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한다는 착각.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by 정오의 햇빛

의자에 한참 앉아 있다가 일어서 옆으로 빠져 걸으려 하면, 무릎이 어딘가에서 비틀리는 느낌이 들곤 한다.

분명 종아리와 허벅지는 크게 달라진 것을 느끼기 어려운데, 그 둘이 만나는 무릎만은 전혀 다른 감각이다.

예전에는 잘 맞물려 돌아가던 부품 같았다면, 지금은 어딘가 맞지 않는 부속을 억지로 연결해 놓고 쓰는 느낌이다.


오늘 나는 새로운 움직임을 개발했다.

의자에서 일어설 때, 바로 걷지 않는다. 일어서기까지도 힘들지만, 일단 선 다음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네 발 정도 제자리걸음을 한다. 그리고 나서 몸을 완전히 옆으로 돌려 똑바로 걷기를 시작한다.

이렇게 하면 관절이 뒤틀린 상태에서 첫 보행을 시작하지 않게 된다. 두 다리, 특히 무릎에게 ‘이제 움직인다’고 미리 알려 주는 준비 시간이 생긴다. 그 잠깐의 여유가 생각보다 안전하다는 느낌을 준다.


이 보행법을 찾기까지도 시간이 걸렸다. 매번 옆으로 걷다가, 반월상연골이든 십자인대든 어딘가가 툭 하고 찢어질 것 같은 불안을 느끼면서도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불편감이 점점 커지자, 결국 몸이 스스로 방법을 찾아냈다.

그러니 당분간은 이 방법을 쓰며 살아갈 생각이다. 어쩌면 약간의 불편함은, 몸이 새로운 길을 찾도록 밀어붙이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요즘은 목소리도 예전 같지 않다.

첫 음절을 낼 때, 그 소리가 제대로 나올지 잠깐 망설여진다. 그렇다면 말을 시작하기 전에, 목을 한 번 다듬는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나이 든 어른들의 헛기침이 괜한 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것은 몸이 보내는 신호에 대한 아주 현실적인 대응이었다.


무언가를 진짜로 이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결국 그 일이 내 몸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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