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시간의 기억
문득 아이들이 애기였을 때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때의 모습이 그립다.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지금 새삼스럽게 손 안에 들어오던
그 아이의 모습이 그리워지는 걸까.
그때 충분히 그 이쁨을 누리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일까.
아이와 편안하게 지내지는 못하고 돌보는 사람으로만 살았던 것 같다.
너무 이쁘고 사랑스러웠던 순간인데, 그 이쁨이나 사랑스러움은 느끼지 못한 채, 닦이고 입히고 먹이고
재우는 노동으로만 아이를 대했던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항시 벅찼던 것 같다.
아, 어떻게 삶이 그럴 수 있었을까?
그게 너무 좋다는, 이쁘다는, 행복하다는, 사랑스럽다는 감정 없이 오직 돌봄의 대상으로만
아이를 바라보다니.
오늘, 그때의 시간이 스쳤다.
사십 년이 지난 지금, 그때 경험하지 못한 이쁨과 사랑스러움과 소중함이 아쉬워 마음이 울컥한다.
그때는 느낄 수 없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아, 참 슬픈 일이다.
아이도 그것을 알았을까.
자기가 돌봄의 대상으로만 여겨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까.
어쩌면 나도 그런 양육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최소한의 돌봄으로 자라야 하는 사람.
어린 아기에게 종기가 자꾸 생겼다. 병원에서는 깊은 고름을 빼기 위해 칼을 대고, 때로는 상처에 고무줄 같은 걸 넣었다. 집에서는 얇아진 종기를 손으로 짜야 했고, 아이는 울었지만 그래도 짜야 했다. 아이에게 이해할 수 없는 통증을 주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많은 일에서 그렇듯, 아이를 키우면서 불가피하게 고통을 주는 순간이 있다. 그럼에도 그것은 사랑과 보호의 다른 형태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