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실체1

나혼자 피흐르는 사모곡을 찍고 있었다.

by 정오의 햇빛

엄마가 돌아가시고 삼 년간은 아무 느낌도 없었다.
그냥 사람이 죽을 때가 돼서 죽었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삼 년이 지나면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죽었다는 느낌은 없고, 그냥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어딘가에 엄마가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묘한 느낌.

그 느낌을 그리움이라고 이름 붙였다.


너무너무 그리워서, 정말 그리움에 빠져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정신이 이상해질 만큼 엄마가 그리웠다.

견디기 힘들어지자 나는 이 그리움의 정체가 뭘까,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그리울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필사적으로 그리워하는 이유가 뭘까?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어느 날 깨달았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는 것을.

현실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펼쳐지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나는 엄마를 부르고 있었다.


그때서야 알았다.

엄마 보고 싶어요.
엄마 그리워요.
엄마 사랑해요.
엄마, 내가 효도하고 싶어요.

이런 마음이 아니라, 엄마, 이것 좀 어떻게 해봐.

엄마, 이것 좀 해결해 줘. 엄마, 나 좀 살려줘.하고 통사정을 하고 있는 마음이 본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아무리 아쉬워도 죽은 사람을 그렇게 불러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무 해결책도 없고, 어떤 것도 할 수 없는데, 그 순간의 내 힘으로는 이겨내기 힘든 순간에,

나는 하느님 대신 엄마를 찾고 있었던 것이었다.


영혼이 있어서 나를 보고 있다면 엄마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죽은 엄마를 불러대는 늙은 딸, 무능한 늙은 딸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안타까울까.


그리움이 아니라, 도움을 청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그리움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그건 그리움도 아니고, 사모곡도 아니고, 안타까움도 아니었다.

그냥, 일생 동안 엄마의 등골을 빼먹다가 죽은 엄마의 등골까지 빼먹겠다고 불러대는 마음이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도 든다.
사람들은 자기가 왜 엄마를 그렇게 그리워하는지 생각이나 해볼까?
엄마가 그리운 게 아니라, 엄마와 함께 했던 시간 속의 행복했던 순간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닐까?

정말로 엄마에게 효도를 하지 못해서 엄마가 그립다면, 굳이 죽은 엄마에게 효도할 필요는 없다.


세상에는 엄마들이 세고 넘친다.
요양원에도, 양로원에도, 노인정에도, 늙은 엄마들은 많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거기로 향하지 않는다.
그저 마음속으로 엄마를 그리워하며, 그리워하고 싶음을 마음껏 누리고 있을 뿐이다.

자기 감상 속에 들어가서 뼈아픈 달콤함을 맛보면서.

아름다운 그리움.


이렇게 말하면 펄쩍 뛸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런 마음이 바로

그리움의 본색이지 않을까?


사람이 부모를 떠올릴 때 작동하는 것은 단순한 사랑의 기억만이 아니라

최종적인 보호자의 이미지이다.

거의 신 같은 존재

성인이 되어도 인생이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이 오면 마음은 자동적으로

보호자를 찾게 된다. 신이든. 엄마든. 어쩔수가 없어서.

혼자라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어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그리움은 엄마라는 개인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형성된 나의 세계를

향한다.

감정을 해부해보면 생각한 것과는 너무 다른 것이 들어앉아 있기도 하다.


엄마를 애타게 찾는 내 마음의 진짜 소리를 찾아낸 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완전히 사라졌다.

혼이 있다면 그건 엄마에게도 얼마나 안타까울 일이겠는가.

엄마는 이미 자기 삶을 마친 사람이다.

이미 떠난 사람에게 내 문제까지 붙잡게 하는건 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때 엄마를 놓아주었다.

이미 아주 오래전에 죽은 엄마를 그제서야 보냈다.

엄마와 내가 분리되는 순간이었다.

죽음으로도 분리되지 못한 관계가 인지하는 순간 분리 된 것이다.

엄마에 의지해 살던 마음이 이제 스스로 서야 하는 순간이다.


사람들은 자기 감정의 원형을 보기를 원치 않는다.

감정의 원형을 보게 되면 그 감정의 아름다운 포장은 벗겨지고

신성해서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 훼손되기 시작한다.

효도는 죄책감일 수도 있고 사랑은 소유욕이기도 하고

그리움은 의존이며 분노는 열등감일 수도 있다.


자신의 감정을 조금만 오래 들여다 보면 굉장히 불편해진다.

빨리 이름을 붙이고 미화하고 이야기로 만들어서 간직한다.


내가 왜 이리 그리워하나

무엇때문에 이러나

이 감정의 밑바닥에는 무엇이 있나를 더듬기 시작하면

결국 자기의 욕망이나 자기의 약함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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