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사람을 필요로 한다.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혹은,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고 해도 그것은 온전히 그 사람의 필요일 뿐이다.
그 필요는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스스로의 시간을 견디기 위해, 감정을 쏟아내기 위해,
혹은 외로움을 덜어내기 위해 만들어낸 하나의 자리일지도 모른다.
그 자리에 내가 잠시 앉혀질 뿐이다.
누군가 나를 부를 때, 나는 그 사람의 필요를 채우는 존재가 된다.
그 순간의 나는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 요구하는 역할로 축소된다.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다.
그저 잠깐, 사람을 구경한다.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어떤 결핍을 끌어안고 있는지, 그 흐릿한 윤곽을 바라볼 뿐이다.
어떤 이들은 더 노골적이다.
자신의 성적인 외로움을 덜기 위해 나를 하나의 가능성으로 다뤄본다.
그럴 때면 나는 곤혹스럽다.
이름도, 삶도,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풀기 위한 대상으로 나를 상정한다는 것은
결국 나를 하나의 기능으로 본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나는 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데, 성을 필요로 하는 타인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존재할 수는 없다.
그건 내가 사라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 자체가 끔찍하게 느껴진다.
필요라는 말은 따뜻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방향이 있다.
나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하는 방향.
나는 그 경로 위에 잠시 놓인 물건이 된다.
그래서 나는 말하게 된다.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어쩌면 그것은 절망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하나의 문장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기 있다.
누군가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이렇게 존재한다.
덜렁, 그러나 사라지지 않은 채로.
누군가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존재했던 시간들속에 나는 어디 있었나?
아무 곳에도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 나의 오랜 꿈이었고 드디어 꿈을 이뤘다.
근데 기쁜 것 같지도 않다. 좀 쓸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