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혐오1

외로와서 그러는것일듯.

by 정오의 햇빛

교회 식당에서 마주 앉은 한 할머니가 계속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하는 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혼잣말도 아닌 상태로
그저 자신의 아쉬움과 서운함을 계속 흘려보내고 있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듣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귀는 열려 있고, 소리는 계속 들어왔다.


이상한 건, 그 이야기가 특별히 공격적이거나 불쾌한 내용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자기의 아쉬움을 계속 말하는 내용이다.
짜증이 올라왔다. 어쩌라구 자꾸 허공에 말을 흘리는것인가.

혼잣말을 하지만 자신의 감정에는 접속되지 못하는 것 같다. 누구도 할머니의 말을 받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할머니는 말은 하고 있지만 하고 있지 않은 상태와 같은 것인가?


나는 왜 짜증이 나는가?

그건 ‘소리’ 때문이 아니라 ‘처리’ 때문이었다.

나는 들리는 말을 그냥 소리로 두지 못한다.
자동으로 의미를 붙이고, 구조를 파악하고, 결론을 예측한다.
누군가 말을 시작하면 중간을 다 듣기 전에 이미 끝이 보인다.
그래서 반복은 견디기 어렵다.


이미 이해한 것을 계속해서 들어야 하는 상태.

그건 단순한 지루함이 아니라 ‘처리 과잉’에 가깝다.

상대는 감정을 배출하고 있지만 나는 그 감정을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정리해버린다.
그 과정이 자동으로,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그래서 피곤하다.


대화가 아닌 소리조차 나에게는 대화처럼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필요한 것은 귀를 막는 것이 아니라 이해를 늦추는 것이다.

들리되, 해석하지 않는 것.
의미를 붙이기 전에 흘려보내는 것.

“저건 그냥 소리다.”


또 하나는
내용이 아니라 상태를 보는 것이다.

무슨 말을 하는지가 아니라 왜 저 상태에 있는지를 보는 것.

그러면 반복은 덜 거슬리고 소리는 관찰의 대상이 된다.


소리에 짜증이 나는 건 어째야 하는가? 나지 않아도 될 소음을 발생시키는 사람이 밉다.

왜 저 상태에 있는지도 알 것 같다. 감정을 주고 받는 상대가 없거나 대화자체가 없을 수도 있다.

아니면 사람은 있고 대화도 하지만 대상들이 진지하게 상대하지 않고 흘려보내고 있을 수도 있는 상태.


어쩌면 나는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너무 빨리 이해해버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세상은 가끔 과도하게 또렷하게 들린다.

그리고 그 또렷함이 피로가 된다.


그 할머니의 모습이 곧 내 모습이 될까 싶어서 짜증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노인혐오는 자신에게 닥쳐올 미래가 반갑지 않아서 멀리 하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근데 멀리 하면 그 날이 오지 않는 것일까?

어쩌면 그 노인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거 아닐까?


민폐없는 노인으로 살기위한 나의 노인헌장이라도 작성해야 할 거 같다.


노인 생활 주의사항.

1.구시렁거리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충분히 감정을 느끼고 주고 받을 대상이 확보되어야 한다.

대상은 어디서?

아마 같은 노인과 관계를 맺어야 하지 않을까? 근데 노인들은 서로를 혐오할 수 있다.

사회복지사나 노인봉사자와 친분을 맺어야 할까?

어떤 노인과의 대화는 유익하지 않을 수 있다. 더 사고가 좁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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