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

질문의 위장술

by 정오의 햇빛

왜라는 질문은 겉으로는 이유를 묻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지금의 나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을
견딜 수 있는 형태로 바꾸려는 시도인 경우가 많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지?
이 질문은 사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에 더 가깝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행동하지?
이 질문 역시 그 행동을 납득할 수 있는 틀을 찾으려는 시도다.


그래서 ‘왜’는 정보 분석이라기보다 이해하려는 노력, 혹은 감정을 견딜 수 있는 언어를 찾는 과정에 가깝다.

이유를 찾으면 감정은 정리되거나 약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왜를 붙잡는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왜를 아무리 붙잡고 있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건 애초에 설명의 문제가 아니라 받아들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이걸 지금 나는 어떻게 느끼고 있지?
이걸 그냥 그대로 둘 수 있나?

이 질문은 이해하려는 단계에서 그대로 두는 단계로 이동한 상태다.


왜라는 질문은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려는 질문이다.
그래서 답을 찾게 되고, 답이 없으면 구조가 끊기며 곤혹스러워진다.

그리고 그렇게 떠나지 못한 왜는 무의식에 남는다.


결국 왜에는 두 가지가 있다.

설명할 수 있는 왜와
그냥 겪어야 하는 왜.


설명도 하지 못하고 겪지도 못한 채 살아있는 왜는 사고를 맴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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