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5

나로 산다는 것.

by 정오의 햇빛

나로 산다는 건 어떤걸까?

나의 입장에서 경험하는 것.

그들의 입장이 아니라 나 자신의 입장에서 세상을 느끼고 판단 하는 것.

기존의 입력된 정보나 입장이 아니라 나는 어떻게 느끼는가.

내 입장에서 이게 맞는가를 보는 것.

나의 감정과 욕망을 접수하고 표현하는 것.

화가 나면 억누르지 않고 화가 나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욕망이 생기면 부정하거나 숨기지 않고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것


나로 산다는 것.

나를 선택하고 책임지는 경험. 존재 자체를 마주하고 느끼는 경험을 쌓는 것.

나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인것 같다.

느껴지지 않는 나를 만나야 하고 남의 기준을 내려놓아야 하고 허공에 떠 있는 나 자신을 마주 해야 하는

순간이다.

마치 어둠속에서 손을 내밀어 보는 것 같다.

내밀지만 보이지 않는다.


떠올리기 싫은 생각이 있다.

그 생각을 정리하고 싶지 않다는 건, 사실은 그 생각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떠올리고 싶지 않다는 건, 그 안에 고통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생각을 미루는 게 아니라, 고통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양파를 먹었다’는 이야기는 계속 말하고 싶어했다.

말할 이유는 없다. 중요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자꾸 꺼내고 싶었다.


왜일까.

그건 고통이 없기 때문이다.

가벼운 이야기이기 때문에 꺼내도 다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의미 없는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자기를 보호한다.


반대로, 어떤 이야기는 끝내고 싶어진다.

정리해서, 닫아서, 다시는 꺼내지 않아도 되게 만들고 싶어진다.

그건 고통은 없지만 성가시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찌꺼기처럼 계속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태어났는가” 이 질문은 무엇일까.

이건 고통이 있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붙잡는 순간 나는 나를 마주해야 한다.

문제는 그 마주함이 조용함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야 그 질문이 올라온다.

그래서 나는 가만히 있지 못했다.

유튜브를 보고 몸을 움직이고 밖으로 나가고 별로 상관없는 글을 쓴다.

나는 바쁜 것이 아니라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건 가만히 있을 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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