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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a J Mar 09. 2022

반려견 예찬론

가장 좋았던 날을 선택할 수조차 없겠다

정이를 처음 만났던  2018년 10월 13일.

그날 정이는 우리 집에 함께 왔다.


그날따라 선선한 가을바람이 좋았고 마음은 두근두근 설레었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그런 날.

우리 가족은  전부터 미뤄두었던 반려견 입양을 위해 부푼 기대를 가지고 지역에 있는 유기견센터를 방문했다. 센터에 정말  많은 아가들이 각자의 좁고 불편한 철장 속에 갇혀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있는 힘을 다해 짖을 때. 꼬리만 흔들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꼬질꼬질 푸들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아이. 혹시 성대 수술을 한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용했다.


" 이 아이는  짖나요?"

"아니요, 순해서 그래요. 정말 순하죠?"

",  번 안아봐도 될까요?"

"그럼요!"


눈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지고 엉킨 털들 사이로 가볍고 아이의 앙상함이 느껴졌다.  작은 심장이 콩닥콩닥 심히 뛰고 있었고 그 위로 따뜻한 체온이 전해졌다. 깃털만큼 가벼운 아이에게 마음을 빼앗긴 건 겨우 3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무엇인가에 홀리듯 마음을 빼앗긴 나는 뒤덮인 털로 인해 눈동자도 보지 못한 채 이를 데려가 싶다고 말다. 혹시 안된다고 할까 봐 내 가슴도 덩달아 뛰었다.


공고기한이 지나지 않아 언제든 주인이 나타나면 돌려줘야 한다는 약속을 받고 나서야 서명을 하고

우리 품으로 왔다. 금방이라도 주인이 나타날 것 같아  조마조마했다. 차에 악취가 진동했지만 이상하리만큼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제야 길게 늘어진 털을 위로 들어 올리고 눈을 보았다.

"아가야, 우리 눈 맞춤 한 번 할까?"

맙소사. 애틋하고 초롱초롱한 예쁜 눈을 가졌다.

나는 이미 이 아이에게 영혼빼앗긴 것 같다.


공고 기한이 지나기까지 사나흘을 맘 졸이며 보냈다. 털의 상태를 보아 유기된 지 한참 된 것 같다고 했지만 센터 입소일로 일주일을 공고기한으로 보기 때문에 사실 정이를 그렇게 일찍 데려올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의 철장 속에 이 아이를 하루도 두고 싶지 않아 공고기한 동안도 우리 집에서 돌보겠다고 한 것이었다. 언제든 인이 나타나면 돌려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우리에게는 다행이었지만 결국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처음 데려왔을 때의 몸무게는 2킬로, 지금이 3.9킬로인 것에 비하면 지금 몸무게의 절반밖에 나가지 않았던 그때의 모습은 앙상한 뼈가 다 보일 정도였다. 얼마나 헤매고 굶었을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


정이와 함께  산 지도 어느덧 4년 차.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내게 귀한 체온과 정을 나눠주는 천사.

정이는 지금도 하루의 대부분을 자면서 보내고 가족들이 하나 둘 들어오면 깨어나곤 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산책 갈 시간이 되면 아빠의 손을 긁었다, 애절한 눈빛을 보냈다, 납작 엎드려 사인을 기다리는 애교를 부린다. 그럴 때면 정말 귀여워서 나가지 않을 수가 없다. 이를 품에 안고 있으면 루의 모든 피곤과 걱정과 스트레스는 날아가고 없으니  보약이 따로 없다.

너와 함께 한 날 중 가장 좋았던 날이 언제인지 선택조차 할 수 없겠다. 모든 순간이 모든 날들이 기쁨이고 행복이라 네가 없는 시간도 상상할 수 없겠다.


가끔 이별연습을 해. 개의 수명은 평균 15년.
앞으로 얼마 남았나 헤아려볼 때마다 미리 가슴이 아파.
정아. 그것보다 더 오래오래 살아줘. 하루라도 더 엄마 곁에서 자고 보리차 냄새나는 발을 킁킁거리며 맡을 수 있는 기회를 줘.
다른 곳 안 가고 엄마 눈에 먼저 띄어줘서 고마워.
우리 집에 와줘서 고마워.
매일 엄마와 같이 잠을  자고 사랑한다 보여줘서 고마워.
얼굴을 비비고 좋은 향기를 맡는 일, 콩닥거리는 심장과 따뜻한 체온을 느끼는 일,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일 그 모든 순간이 우리에게 행복인걸.


사지 마세요. 지금 가까운 유기견센터에 가면 주인 없는 수많은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새로운 가족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 아이들의 지금 모습이 볼품없고 지저분하다고 해서 실망하지 마세요. 어떤 아이든 미용하고 씻겨주고 사랑 듬뿍 주며 키우면 예쁘지 않은 아이가 없답니다^^



유기동물보호 시스템 https://www.anima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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