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박또박 써지지 않는 글을 마음속에 수백 번 썼다 지웠다 고쳤다를 반복하다.
어느 날 쿵. 하고 내려앉는 가슴을 쓸어안듯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서야 나는 비로소 이 글을 쓴다.
셀 수 없이 많은 날들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보일 눈물의 폭풍이 두려워 바라보고 그만 닫고 커튼을 쳤다 다시 또 슬며시 열어보는 현실과의 맞닿뜨림.
나는 아직 완전히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아빠는 때때로 다른 사람 같았다. 내가 기억하는 온화하고 다정한 모습이 사라질까 두려웠고 아직 어리고 싶은 딸로서 나이 든 아빠를 어른처럼 위로하는 게 슬펐다. 그렇게 또 현실과 마주하기 싫은 날에는 모든 것을 덮었고 내가 할 일을 묵묵히 했다.
"요즘은 기억이 안 나는 게 많아. 통 잘 모르겠어. 가던 길도 낯설고 처음 보는 것 같고..."
- "아빠. 나도 그래. 사람이 어떻게 모든 것을 다 기억하겠어.
그리고.. 잊어버려도 괜찮아. 내가 기억하고 있으니 백번이고 천 번이고 다시 알려줄게."
그로부터 얼마 후 아빠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오빠와 함께 간 제주도 여행에서 공항 주차장에 두고 온 아빠 차를 여행지마다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였을까, 30분 전에 통화하고 다시 전화해서 같은 이야기를 다시 물었을 때부터였을까.. 아니 어쩌면 그전에... 과거로 돌리는 테잎감기는 끝나지 않은 듯 보였다.
시작을 찾고 싶었다. 내가 어디서부터 놓쳤을지 더듬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더듬거려 그 시작을 찾는다 해도 잃어버린 아빠의 기억이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예상은 했지만 이미 까맣게 변하기 시작한 아빠의 뇌 사진을 보고 울음을 삼켰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빠는 초기니까 괜찮을 것이다, 오히려 일찍 알아 다행이다, 지금부터 약 잘 먹고 건강 챙기며 좋다는 건 다해보자 온갖 위로의 말들을 뱉어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아빠가 그날 병원을 다녀온 기억이 사라진 것 같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매일 먹어야 하는 치매약을 두고 왜 먹는 약인지를 물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엄마는 차마 치매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못했다고 했다.
"아빠 우리 며칠 전에 엄마랑 같이 병원에 갔었잖아. 의사 선생님이 뇌사진도 보여주며 얘기했었는데."
- "그랬니? 몰라. 나는 기억이 안 나네."
"응. 그럴 수도 있지. 근데 그날 아빠가 치매 초기라고 하셨어. 약 잘 먹고 운동도 하고 관리 잘해주면 좋아질 거라고.
뇌 영양제라고 생각하면 돼."
- "응. 그렇구나. 알겠다."
전화를 끊고 아빠가 치매진단을 받은 이후 처음으로 눈물이 났다. 정말.. 진짜였구나.
눈여겨봐둔 주야간보호센터에 전화를 걸어 상담을 갔다. 생각만큼 좋은 시설은 아니었지만 내내 편안한 미소를 띠는 온화한 실장님이 마음에 들어 덥석 아빠와 함께 다시 오겠노라 약속을 했다. 하지만 아빠에게 가자는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까.. 그렇다고 엄마와 하루 종일 집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엄마도 엄마의 삶을 살아야 했다.
일부 자기 부담금이 있었지만 무료라고 아빠를 안심시키고 노인대학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득하는 동안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일 상담 같이 가보자는 말에도 알겠다고 했고 계약서를 쓰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산책을 할 때도 좋다거나 싫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아빠 노인대학 다니면 친구도 사귀고 활동도 많이 하고 좋을 거라고 엄마와 내내 희망적인 얘기들을 나누고 내려주고 집에 가는 길. 홀로 차 안에서 가슴이 아렸고 자꾸만 코가 시큰거렸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한 움큼 약을 삼킨 것처럼 쓴맛이 올라왔다. 그리고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토해내듯 목놓아 울었다.
'아빠, 미안해...'
아빠에게 묻지 않았다. 센터에 가고 싶은지, 집에 있고 싶은지 아빠의 의견은 한 번도 묻지 않았다. 가지 않는다고 하면 어쩌나 그럼 엄마는 꼼짝없이 24시간을 어떻게 보내나. 무엇보다 하루 종일 집에서 아빠가 무얼 하며 보내고 그런 의미 없는 시간만 보내다 더 나빠지면 어쩌나. 판단하고 결정했고 가야만 했다.
지금도 아빠는 가끔 고집스러운 원칙과 도덕성으로 아빠의 기준과 맞지 않는 사건이나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가고 싶지 않다고 떼를 쓰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여러 사람이 달래고 설득하고 부추겨 다시 나가길 여러 번... 이런 과정들은 그저 초기에 일어나는 일련의 작은 해프닝이겠지 하는 생각으로 덤덤히 보낸다. 가끔 시간을 내서 나는 싫어하지만 아빠는 좋아하는 산행을 하기도 하고 걷고 자연을 느낀다. 어디를 가도 무엇을 먹어도 지나고 나면 기억하지 못하는 아빠를 위해 모든 순간을 아빠의 핸드폰 사진으로 남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마음 한편.. 아무한테도 꺼내지 못한 나의 깊은 내면에 주문을 건다. 어느 날 문득 아빠가 아빠 딸을 알아보지 못하는 순간이 올 때, 누구세요라고 물을 때 울지 않을 것.
아빠 딸이야. 하며 활짝 웃을 것.
그렇게 아빠의 모든 순간을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으로 마주해 줄 것.
그리고 아빠를 기억해.
사는 내내 단 한 번도 아빠로서 소리치지 않았던 내 인생의 웃음 제조기. 사랑하는 우리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