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한 송이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
한 친구가 있었다.
고등학교를 그만두고도 검정고시로 명문대에 입학하고 석사까지 받은 수재
고등학교 당시 똑똑했던 친구의 방황과 자퇴는 충격적이었고 그 일은 친구들 사이에서 오래오래 회자되는 듯했다. 아니 어쩌면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들 사이에서 그 일은 희미하게 잊혀졌는지도 모른다.
내 단짝이었고 떨어지는 낙엽에도 웃고 울었던 우리는 그렇게 잘 어울리는 짝이었다. 단골 메뉴 떡볶이와 어묵에 행복해하고 좋아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웠던 시간들을 뒤로한 채,
친구가 두고 간 다이어리를 나는 얼마나 읽고 또 읽으며 그 아이의 필체를 쓰다듬었던가. 보고 싶었고 도와줄 수 없어 가슴이 아팠고 설득할 수 없어 자책했던 시간들. 눈물 머금은 친구의 마음만큼 슬펐고 친구의 책을 정리하고 짐을 꾸리면서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는 것 밖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우리였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친구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을지 몰라 말 꺼내길 망설이며 애잔한 눈빛으로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는데 그 친구의 첫마디는 이랬다.
"야, 나 대학 나왔어! 멀쩡히 회사도 다닌다구!"
그 얘기 전 눈치만 살피던 다른 친구와 나는 그 말에 빵 터져 얼마나 웃었던지. 그녀다웠다.
그리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었다. 늘 친구를 떠올릴 때마다 미안했었다.
그때 나는 좀 더 적극적이었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더 붙들고 설득했더라면,
학교에 더 있을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아주었더라면, 그 고민들 더 들어주고 다독여주었더라면.
그렇게 흘려버린 시간들과 놓쳐버린 친구를 두고 후회하고 또 후회했었다. 그런데 고맙게도 그 시간들을 다 버티고 그 어떤 친구들보다 더 멋진 사람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친구는 덤덤하게 그간의 일들을 얘기해주었다. 그리고 왜 그때 질풍노도의 시간들을 겪었었는지도.
아. 나는 정말 몰랐다. 그런 사연들로 친구가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들을 보냈다는 것과 그 뒷면에 제자를 위해 그토록 고군분투한 담임선생님이 있었다는 사실을.
친구가 말했다.
"내 생애 마지막 선생님. 난 그 선생님을 꼭 다시 찾아뵙고 싶어."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그때의 담임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나를 못 알아보는 선생님에 대한 서운함도 잠시 "선생님! A는 기억하시죠?"
"네. A가 그때 학교를 그만두었었지요?"
"네. 그 A가 저랑 친한 친구였어요."
"아 그렇군요."
우리의 대화는 여기까지였다.
강연은 시작됐고, 강연 후 만나서 반갑다는 얘기만 가볍게 나누고 다른 관계자 때문에 선생님과 더 얘기를 나누지 못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내내 '선생님! 그때 선생님이 걱정하셨던 A는 잘살고 있어요' 하고 외치고 있었다.
담당자에게 선생님의 연락처를 전달받은 나는 A에게 선생님을 만났고 선생님이 너는 기억하더라는 얘기와 함께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 당장 전화하고 싶은데 선생님이 반가워하실까?"
"그럼, 당연하지!"
십여분 후 친구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내게 다시 전화를 했다.
"선생님이.. 선생님이 내가 다시 올까 봐, 언제든 다시 학교에 돌아 올지도 몰라서... 그때 자퇴 처리를 하지 않고 그 뒤로도 계속 등록금을 대신 내주며 휴학 처리했었대..."
그러면서 지금이라도 학교를 다시 다니고 싶으면 다닐 수 있다며 늦지 않았다고 했다고 한다. 늘 네가 힘들게 살고 있을까 봐 마음에 걸렸었다고 말이다.
친구는 펑펑 울며 자기 대학도, 대학원도 나왔으며 직장 다니며 사람 노릇하고 산다고, 꼭 선생님을 찾아뵈러 가겠다고 했단다. 선생님은 이렇게 전화해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맙다고 했고 목이 메인 친구는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나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목에서 무엇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듯했다. 전화를 끊고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름다운 것은 진정 이런 것이다.
감동은 이런 것을 두고 말한다.
참스승이란 어떤 스승인지 생각해본다. 미처 다 헤아릴 수도 없는 선생님의 그 깊은 마음을,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믿는 세상에서 꽃처럼 피어나는 정성을. 나는 보았다.
그리고 친구의 성공에 선생님의 마음과 정성이 있었음을 마음 깊이 새겨본다.
선생님 말이야.
그때 내가 그렇게 힘들게 했었는데 사실 한 번도 화를 내거나 꾸중한 적이 없었어.
친구가 말했다. 훗날 그토록 이를 악물고 버티고 공부하고 여기까지 오기까지의 시간들에는 그 선생님이 보여주었던 정성과 사랑이 있었노라고.
길가에 하찮은 들꽃 한송이도 소중히 여기고 보살피는 마음.
그런 마음으로 아이들을 살필 것.
나는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