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스물한 살 청년 서영준.
서영준 일병이 새벽 4시에 국군 수도병원에서 사망하였습니다."
시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새벽에 걸려온 전화의 상대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사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되물었고 마지막 문장만이 귀에 맴돌았다. 해가 일찍 뜨는 여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캄캄한 시간이었다는 것과 한참을 전화기를 붙들고 울어도 아침이 더디게 왔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의식이 없었던 건 일주일 전부터라고 했다. 일주일 동안 한 번도 깨어나지 않았고 그 날 새벽 영준이는 세상과 작별했다.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시간은 얼마쯤일까...
나는 스물한 살이었고 그 아이도 스물한 살밖에 되지 않았다. 군대에 가기 전 내 남자 친구와 셋이서 점심을 같이 먹었고 잘 다녀오라고 기분 좋게 어깨를 두드려 주었던 일, 면회 꼭 가겠다며 씩씩하고 건강한 그 아이를 응원해주었던 시간들.
친구가 군대에서 보내온 편지는 한 달도 되지 않았었고 난 답장을 미룬 채 그냥 편안하고 즐겁게 그 편지를 읽었을 뿐이었다.
부고를 듣고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다른 친구와 나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여러 번 침을 삼키고 심호흡을 했지만 친구의 영정사진은 생각보다 더 슬펐다.
신발은 벗었을까. 누군가와 인사는 나누었을까. 난 그냥 주저앉아 울었다.
주변에 가족이 있다는 것도, 군인들과 다른 친구들도 많이 와있을지 모른다는 것도 잊고 숨을 못 쉴 듯 쉼 없이 울었던 것 같다. 누군가 나를 안고 함께 울었는데 알고 보니 친구의 부모님이셨다. 또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너무 많이 울어서 여자 친구인 줄 오해했다고 하셨다. 일 년쯤 만났다던 친구의 여자 친구는 끝내 장례식장에 오지 않았다.
친구는 군대에 가기 전 일 년 내내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을 부모님을 다 드리고 군대에 갈 만큼 효자였다. 형, 누나 밑에서 자랐지만 예의 바르고 살가운 막내였다고 했다. 나도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시절 그 친구와 공부하며 많은 위로를 얻었더랬다. 우린 고등학교 시절 서로의 걱정과 고민을 들어주고 걱정하며 격려해 주던 멘토였던 것 같다. 모의고사가 끝날 때면 꼭 몇 점 받았는지 결과를 알고 싶어 했고 공부를 잘하지도 않는 나를 치켜세우며 부러워할 땐 가끔 쥐구멍에 숨고 싶기도 했었고, 노력한 만큼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친구가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건 순전히 칭찬 잘해주는 그 친구의 마음 씀씀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들 자신들만의 크리스마스를 보내기에 바쁜 크리스마스에도 내 생일임을 잊지 않고 축하해주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거나, 이성친구가 생기면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정말 좋은 친구. 늘 남을 먼저 생각하고 정 많고 배려심이 많아 주변을 밝게 하는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랬던 친구가,
6년 지기 꿈 많던 친구가 그만 툭. 그렇게 가버렸다.
사망원인은 알 수 없지만 외상이 전혀 없어 폭행이나 사고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부검은 하지 않았다. 날은 3일 내내 무척 더웠고 친구는 현충원의 어느 한 자락 넓지 않은 땅 한켠만 차지한 채 한 줌의 흙이 되었다.
어느 부모가 스무 해 키운 막내아들을 보내며 슬프지 않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때 더 뼈저리게 그 고통을 보았다. 나는 결혼하면 아들을 낳고 싶지 않다, 군대에 보내고 싶지 않다 하는 다짐도 했던 것 같다.
나는 차마 친구의 부모님의 눈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상을 치르는 3일 동안 잘 먹을 수도 없었다. 친구 부모님의 등만 봐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러고도 얼마나 오랜 시간을 버티며 그 시간들을 이겨내고 극복할 수 있었을까. 나는 보지 않고, 가지 않고 얼마 되지 않은 추억들을 더듬으며 한 번씩 꺼내어보겠지만 일상이었던 자식을 그 수만 가지 추억을 어떻게 묻을까...
세상에 없는 사람이 그리워질 때
마음 편하게 추억할 수 있다면 그 시점이 우리가 진정으로 그 사람과 작별하는 시간이다.
땅에 묻고 바다에 흩날리고 온 그 사람의 체온이 멀어질 때가 아니라 좋았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하늘 보고, 눈을 감고 추억할 수 있으면.
소중한 사람을 잃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시간은 때때로 잔인하고, 때때로 고마운 존재이다.
그때 말이야. 답장 일찍 못 해서 미안해. 다시 또 기회가 없다는 걸 알았더라면 고운 편지지에 정성껏 눌러쓴 편지를 보낼걸. 할 말이 없었던 건 아니었어. 나도 잘 지내는지 밥은 잘 먹는지 묻고 싶었는데 맘속에만 담아두고 끝내 쓰지 못했네.
기일에 맞춰 꼭 가보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 다시 그곳에 가볼 용기를 내지 못했던 건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였을 거야.
언젠가는 정리해야만 했어. 곱고 착했던 너를 어딘가에 예쁘게 기록해주어야만 할 것 같았는데.
늦었지만 이제야 너를 보자기에 싸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이름 석자와 그 시절의 너 말고 또 무엇을 기억할 수 있을까.
생일선물로 책 한 권 사보라며 문화상품권을 들고 버스정류장에서 날 기다려준 건 다시 생각해도 감동이었다. 모의고사에 관심 없던 나에게 매번 점수를 물으러 전화했던 건 또 얼마나 웃겼다고! 남자 친구랑 다툴 때마다 화해할 용기를 준 것도 고마워. 그래. 이렇게 많이 또 기억할 수 있겠지.
다 기억나. 네가 해주었던 따뜻한 위로도, 내 연애에 대한 소중한 조언도, 성공하자고 의기투합하던 응원도, 배꼽 잡고 웃던 표정도. 하나하나 다 기억이 난다.
너는 참 빛나는 사람이었다.
고마웠어. 잊지 않을게.
초록잎 고왔던 여름날 회색빛 비석과 함께 묻힌
밝고 따뜻했던 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