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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a J Feb 05. 2017

런던에서 보내는 편지

런던,파리 여행기 #1

사랑하는 아들!


네가 태어났던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엄마아빠는 아직도 대학생인것만 같은 앳된 부모였지만 널 처음 안아보고는 엄마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나즈막한 목소리로 찬송가를 불렀다. 널 축복하고 또 축복했단다.

무럭무럭 자라서 걷고 스스로 밥을 먹고 기저귀를 뗀순간도 감격스러웠지만 사실 넌 정말 편한 아이였다.

사람들은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지 믿지 못했지.

이제 겨우 36개월 넘긴 네가 4시간동안 가는 버스안에서도 버스에서는 조용히 얘기해야돼 하는 말에 소곤거리며 얘기하고

여행지에서 밤12시까지 걸어다녀도 힘들다고 칭얼거리지 않고

식당에서는 늘 어른처럼 얌전히 앉아 깨끗하게 밥을 먹는 너는. 주변에서 혀를 내두를 정도로 레전드였어. 너를 데리고 가는 어느 자리도 늘 자랑스러웠다. 심지어 어른들이나 여고생들이 지나가며 사진찍어도 되냐고 사진을 찍지 않나, 보는 사람마다 잘생겼다고 호들갑이니 엄마 어깨가 얼마나 으쓱해졌을지 너도 상상이 되지. 다들 엄마에게 태교를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 했고 그럴때마다 엄마의 온갖 태교이야기들이 줄줄 나왔단다. 사실 십자수, 클래식듣기, 피아노치기, 노래부르기, 독서, 영어공부...정말 좋다는 건 다 했을 정도 였거든. 물론 너도 알다시피 엄마에게는 엄청 힘든 육아를 안겨줬던 둘째도 있으니 꼭 태교때문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엄마를 엄마가 되게해 준 너는 특별했던 첫째였고 열달동안 최선을 다해서 품었고 이야기하고 세상의 모든 사랑을 다 주었던 것만은 인정해야 될거야.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걷고, 퍼즐을 잘하고, 글을 빨리 깨우치고, 책을 좋아하고, 기억력이 좋고, 관찰력이 좋고. 그런 이유들로 여느 엄마들처럼 엄마도 설레고 온갖 기대를 품었던 시간들이 있었다. 고백하건데 어쩌면 나는 정말 똑똑한 아이를 키우고 있는지 모른다고 흐뭇했었어. 어쩌면 혹시 그런 기대가 지금껏 살아온 날들중에 너가 그냥 너로서 살아가는데 있어 너를 때때로 힘들게 했는지도 몰라. 그랬다면 엄마가 정말 미안해. 물론 너는 지금 너 자체로서 너무 빛나는 아이지만 그 또래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내 아이가 몹시 똑똑하다는 착각이나 기대는 필수였으니까 너도 이해해 줄거지? 지금도 어린 아이들의 부모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해.

여섯살부터 혼자 샤워하고 일곱살부터 동생을 씻겨주고 머리도 감겨주던 너는 정말 착하고 의젓했어.

여덟살에 병원에 혼자 다녀와 약국까지 들렀다 미션을 완료하고 마트로 뛰어오던 니 모습도 생생해.

1학년부터 동생데리고 식당에서 둘이서만 밥을 사먹을 수 있는 아이는 세상에서 정말 드물거야. 학교마치면 유치원에 들러 동생을 데리고 집에 오던 여덟살의 너는 생각만해도 가슴이 찡하다.

그래서 엄마는 다 좋아.

천재같았던 네가 그냥 평범한 아이여도 좋고

동생챙기던 의젓하고 착한 네가 조금 소심한 아이여도 괜찮고

감성적이고 생각이 깊어 용기있게 행동하지 못하는 모습도 사랑해.

너는 너니까, 너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그러니 살면서 어떠한 순간도 선택을 하는데 있어 주저하지 말거라. 깊이 생각하되 그렇게 마음을 굳혔다면 니 생각이 옳다. 어느 걸음에도 니가 행복하지 않은 일을 선택하지 말거라. 돈도, 명예도, 어떠한 소중한 일에도 너의 행복과 맞바꾸지 말거라.

행복은 손에 쥘 수 있거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마음가짐만 달리 가지면 언제든 행복할 수 있단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기분이 좋고 침대 발치에 앉아 발을 내딛을때 옅은 미소가 지어 진다면, 좋아하는 음식을 한입 베어 물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을 때 가슴이 따뜻해지거나 흥이 난다면 너는 행복한 사람이다.

주변 사람의 슬픈 소식에 가슴이 아프고 기쁜 순간을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으면  너는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바라건데 언제나, 너의 모든 순간에 널 응원하고 지지하며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을 잊지말기를. 너는 엄마가 이 세상을 살면서 받았던 가장 큰 선물이었음을.


받은 사랑만큼 베풀 줄 알고 마음 쓸 줄 아는 따뜻한 사람으로 건강하게 살아간다면
엄마는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아.


세상에서 가장 큰 네편. 엄마가.
춥고 바람부는 날 런던에서 씀. 2017@

세인트제임스 파크. 우리가 우리여서 행복한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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