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파리 여행기 #2
런던에 가면 꼭 가봐야 한다는 핫플레이스 더샤드 빌딩.
그리고 더샤드 35층에 위치한
차이니즈 레스토랑 후통.
예약제로 운영하는 고급 레스토랑인 데다 드레스코드까지 맞춰야 한다니 아이 둘을 데리고 가기에 부담스러웠지만 런던의 야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고 해 주저없이 예약을 했다. 3달 전부터 예약을 받아 예약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랬는데 다행히 평일 디너 예약으로 1주일 전에도 예약할 수 있었다. 겨울비수기라 그랬는지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지만 사람은 점점 많아졌고 풀북이었다.
후통은 더샤드 건물은 본관 1층 입구에서 가방 및 외투 검색대 통관까지 마치고 엘리베이터로 이동한다. 입구에서부터 풍기는 분위기에 우리는 목소리마저 작아졌다. 34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건장하고 말끔한 직원에게 레스토랑까지 안내를 받았고 입구에 들어섰을 때의 풍경은 감격 그 자체였다. 한층 더 계단을 오르며 아래층까지 펼쳐지는 파노라마 야경에 눈을 떼지 못한 채 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짧은 순간이었지만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지금 건강한 모습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우리 셋 행복한 마음을 안고 함께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했다.
"옷 맡기겠어요?
"네"
옷을 맡아주고 번호를 주며 나갈 때 찾아가면 된다고 하는 직원의 말에 대답은 건성건성.
"너무 멋지다! 진짜 멋지지?"
"애들아, 사진 찍어야 돼!"
그때 보았지. 엄마는 너희 눈에 담긴 수많은 불빛들도.
그리고 또 보았지. 엄마가 느낀 것만큼은 아니어도 너희 심장이 쿵쿵 거리고 있다는 걸. 환희고 설렘이고 감동인 그것을.
우리는 함께 보았지. 우리가 무엇에 감사하고 어떤 꿈을 꿀 수 있는지.
"창가 쪽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있으니 안쪽에 있는 창가 자리로 안내할게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창가 자리에 앉을 수 있대!" 기대했고 신이 났다.
분위기에 취한 아이들의 뒷모습은 이미 어른이었다.
발걸음은 가만가만,
말소리는 소곤소곤,
눈은 초롱초롱.
안내받은 자리는 요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가장 안쪽 창가 자리였다. 아이들을 위해 마련해준 자리에 감사했다. 저녁시간이라 주변에는 모임인듯한 테이블이 많았고 어린이는 거의 없었다.
템즈강 주변의 대부분의 핫플레이스가 보이고 저 멀리 런던아이도 보인다. 쉴 새 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딸아이의 수다도 즐겁고 진중한 아들의 관찰과 잔잔한 마음 씀씀이에도 뿌듯해진다.
내게 기억에 남는 야경은
세부 탑스 힐에서의 야경,
홍콩에서의 야경,
도쿄에서의 야경,
오사카 메리어트에서 바라본 야경,
그리고 이 날 런던 더샤드의 야경.
각각의 무수한 사연과 그래서 만들어진 추억이 비교 불가한 풍경을 만들어내지만 객관적인 위너는 런던의 더샤드다.
더샤드 전망대의 입장료는 약 30파운드(한화 45,000원)로 너무 비쌌기에 조금 낮은 층수지만 더 가까이 야경을 볼 수 있는 같은 건물 레스토랑을 추천한다는 게 사람들의 논리였다. 그리고 나도 이것이 정말 잘한 선택이고 식사를 하며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야경을 천천히 음미하며 실컷 볼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라는 걸 곧 깨닫게 되었다.
후통은 테이블 인원에 따라 제한시간을 두는데 우리는 3명이라 이용시간은 6시부터 8시까지.
초과시간에 따라 30분마다 차지가 있으니 우린 딱 8시까지만 보기로.
물도, 음식도, 와인도 비쌌지만 계산하고 나오며 하나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설였지만 와인도 마시길 잘했다.
"음. 와인 한잔 마시고 싶은데 너무 비싼 것 같아. 마실까 말까?"
와인 메뉴를 달라고 하고는 10분째 고심 중인데 딸아이가 말한다.
"엄마! 그렇게 마시고 싶은데 마셔요! 전 엄마도 하고 싶은 걸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들이 답한다.
"얼만데요? 에이, 얼마 안 하네. 그냥 마셔요."
덧붙여 딸아이의 듣기 좋은 효녀 발언에 뭉클함이 절정에 이른다.
"엄마, 내가 다음에 어른되서 엄마랑 꼭 여기 다시 올 거예요. 그리고 와인도 한잔이 아니라 한병 사줄거구요. 엄마가 먹고 싶은 거 다 사드릴게요.
그러고 나서 이 건물의 비싸다던 그 호텔에 가서 우리 둘이만 자요."
그 순간 부자가 아닌 것도 꽤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모르겠지. 와인 한 잔을 두고 고민할 때 자식이 주는 달콤한 선물을.
이 말을 듣고 싶어 일부러 오래오래 와인 한잔을 골랐는지도 모르지만 백만 불짜리 와인이 이만큼 달콤하고 근사할까.
엄마는 너무너무 행복했다. 너희 꿈도, 다짐도 술술 나오게 하는 이 장소가 마법 같았다. 와인 한잔에도 감사했다.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아는 너그러움과 슬며시 손을 잡아주는 따스함이 있는 너희가 엄마의 아들이고 딸이어서 참으로 감사한 시간이었어
오늘 이곳에서 나눈 우리의 모든 것들이 살면서 내내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기를,
마르지 않는 에너지이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