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발이 준 선물
"지은아" 엄마 피 나왔어..
엄마의 목소리에서 떨림이 느껴지며 통화한 그날..
엄마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보호자 없이 처음 홀로 암선고를 마주하게 된 엄마의 심정이 내 가슴을 아려왔고 암병원에 다녔던 나는 부랴부랴 진료를 잡아 엄마의 옆을 함께 하며 수술날짜를 정했다. 그렇게 2018년 11월 겨울 자궁내막암 4기 판정을 받게 되었고 내 마음과 우리 가족은 꽁꽁 언 듯 한 추운 겨울을 맞이하게 되었다.
" 지은아.. 엄마 힘내야 하니깐 수술 전에 굴밥 먹자..
애써 아닌 척 웃는 미소를 짓으며 식당옆 교회에 들어가 " 파이팅" 하며 받아들이는 엄마의 모습에 애처로웠지만 같이 잘 이겨내기를 기도하며 표현하지 못한 마음을 몸으로 "사랑해"라고 하트 그리며 서로의 마음을 위로하였다. 그날 이후 우리 가족의 모든 삶이 엄마에게 중심이 되며 조금씩 힘을 모았다.
그 당시 해외에 근무하고 있었던 아버지는 모든 것들을 정리할 준비를 하고 한국에 오실 절차를 밟고 있었고 아버지가 오기 전까지 엄마의 간호는 오빠가 도맡아 감당했다. 당장 회사를 때려치우고 엄마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내 몸조차도 가누기 어려웠던 나는 그저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엄마까지 챙기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나 스스로 감사하다고 위로한 것은 야근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일 끝나고 내가 일하는 병원에 입원하여 엄마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가졌다. 하지만 그 시간은 나에게 너무 짧았고 그리움만 더 쌓이는 것 같았다.
"조금만 더 같이 있고 싶은데..
엄마와의 작별의 시간이 왜 이리 빨리 오는지 마음처럼 할 수 없는 모든 상황들이 답답하기만 했다. 엄마의 회복을 기원하며 퇴원 후 항암치료 1차를 시작했다. 항암치료 후 여러 부작용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시작을 했지만 지켜보는 암환자 가족들의 삶은 엄마뿐만 아니라 나 또한 암환우가 된 것 같은 고통이 왔다. 배통증을 심하게 호소한 엄마를 보며 잠시 이 또한 지나가는 통증이라 처음에는 생각했다. 하지만 무언가 매일 부풀 오르는 변화에 우리 가족은 이상한 느낌을 감지했고 진료를 다시 잡아 진료받고 응급실에도 갔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그 징조들은 수술대에 오르게 되는 사건으로 이여졌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두 번째 수술을 하게 되었다. 오빠를 통해 급박하게 돌아가는 위기상황임을 느꼈고 일하고 있었던 나는 불안하고 초조하며 두려웠다. 업무를 마치고 수술하고 있는 엄마에게 달려간 그날.....
내 인생에 잊을 수 없는 한 사건이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