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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지은 Aug 17. 2024

왼쪽어깨 회전근개 파열이 오다.

왼손발이 준 선물


어깨힘줄이  끊어졌네요?


의사 선생님에게 진료 보던 중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진료결과를 들었다. 회사 출근길 편의점에 들러 커피 사러 간 그날 장애물에 오른쪽 발이 걸려 또 넘어져 왼손을 짚었는데 그것이 문제가 되어 병원에 방문했다. 병명은 왼쪽어깨  회전근개 파열이었고 그때 나이 35살이었다. 이제 회사의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사람답게 나도 살아볼 마음의 여유가 생길 때쯤이었다. 이제 나에게 모든 고난은 끝났고 행복하게 살 날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말은 들은 나는 차를 타고 열심히 달리다 사고로 인해  급브레이크를 밟아 갑자기 정지된 것 같았다.  그 당시 어깨뿐만 아니라 몸이 조금씩 고장 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이제 운동과 오른쪽 재활훈련을 열심히 하려고 마음먹으며 지내려고 했었던 내 계획에  의사 선생님의 말은 나에게 충격 그 이상이었다.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나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파열은 보통 운동선수들이 많이 온다는데... 50대쯤 되면 오는 질병이라는데... 내가 벌써? 오른손을 쓸 수 없어 왼손으로 모든 일상생활과 업무를 감당해야 했던 나는 두 팔을 잃은 기분이었다. 진단받고 난 후  나의 몸의 모든 기능들이 점점 망가지는 신호가 왔다. 어렸을 때부터 걷는 자세가 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몸 전체가 틀어진 상태에서 생활했던 나의 척추와 골반이 통증의 신호가 온 것이다. 의사 선생님이 나이 들면 아플 수 있다고 한 증상이 30대부터  왔다. 아직 나는 젊고 할 일들이 많은데.. 결혼도 하지 못했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오른쪽 어깨석회염도 왔고 몸의 이상신호가 계속 오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몸의 밸런스와 바른 자세가 생활습관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주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그렇게 머리에서부터 발과 손끝까지 통증이 와서 회사에서 업무 보는 것이 너무 버거워 병가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내 문제는 단순히 어깨파열만 해결하면 되는 상황이 아니었다. 장애로 몸의 균형이  다 무너져 휴식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장기화적인 휴식은 불가능했고 치료비도 만만치 않게 나갔다.  또 꾸준한 관리와 재활이 필요했고  몸이 돌처럼 굳어 있어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히라도 느낀 것은  정규직원들이 있었고  전에는 휴가도 쓸 수 없었는데 휴가를 쓰며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과 또  임시직원으로 온  남자직원이 내 아픈 몸을 배려해서 업무를 도와준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그 시간을 버티었다. 회사에서 무슨 정신으로 버틴 건지 지금 생각하면 나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였다. 왜 이렇게 미련하게 견디였을까 싶을 정도였으니깐 말이다.


그 시간이 너무  고통스러워  언제쯤  이 터널을 끝낼 수 있을까? 그   생각만 하며 나의 목숨이 다해져 차라리 천국에 가는 게 낫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회사에서 업무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씻을 여유도 없이 그렇게 바로 뻗었다. 어떤 때는 통증 때문에 잠을 자지도 못했다. 그렇게 가만히만 있어도 너무 아파서 수면제라도 먹고 잠이 와서 이 고통을 잠시라도 잊고 싶었다. 그렇게 내 왼팔의 통증으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옷과 샤워는 내가 통증을 참아가며 겨우 했지만 그 외 모든 일상생활은 가족들에게 의지해야 했고 냉장고 문 여는 것, 물건 하나 드는 것 사소한 일조차 다 도움을 받으며 지냈다.


그  고통을 통해서 나는 많은 사고의 전환이 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누워 있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오른쪽 다리가 불편해도 두 다리로 통증 없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것,  비록 오른손이 불편하지만 한쪽팔이라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말이다. 그동안 30년 동안 충분히 누리고 살아왔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항상 비장애인들과 비교하며 내가 부족한 것에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다. 그러나 어깨파열로 나는 불만이 많았던  나의 장애에 대해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할 수 없는 것 같지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고  약한 것 같지만 강했다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와 세상이 경쟁적 구조에 있기 때문에 그러한 문화 속에 스며드는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 일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나만의 색깔과 고유한 것이 가장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지금은 보이지 않고 조금 느리더라도 나만의 탬포로 꾸준히 가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문이 열릴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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