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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왕가네 Apr 26. 2024

가난한 부부의 서울 신혼집


중국인 남편이 한국에 오고 나서, 나의 자취방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신혼집이 되었다. 

천호동 다가구 월세 13만 원의 원룸이 나의 신혼집이 될 줄이야... 



가난한 부부가 서울에 신혼집을 구하게 되니 두 가지가 변했다. 


첫째, 집에서 밥을 해먹기 시작했다. 

반년이 넘도록 반 이상 남아 있던 식용유가 중국인 남편이 한국에 오고 단 2주일 만에 동이 났다. 


둘째, 한 공간에서 모든 것을 같이 했다. 

방이 하나이기에, 

그 방에서 같이 먹고 

그 방에서 같이 자고 

무엇을 하든 그 방에서 같이 했다. 


설령 다른 일을 하더라도, 한 방에 있기 때문에 늘 같이 있게 되었다. 

그게 너무나 좋았다. 

한 공간에서 같이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주말에는 맥주 한 캔 들고 집 바로 옆 한강에서 데이트를 했다. 


서울 천호동 신혼집 




그렇게 보증금 1천만 원 & 월세 13만 원의 천호동 원룸에서 1년 반을 살다가

우리는 보증금 7천만 원의 신림동 전셋집으로 이사를 갔다. 


18평 방 3개의 반지하 빌라...

우리에게는 궁궐 같았다!


그동안 사지 못했던 식탁, 침대, 냉장고, 세탁기 등을 신나게(?) 사댔다.  

방 한 개는 침실, 중간방은 옷방 그리고 작은방 하나는 게스트룸으로까지 꾸몄다. 


친구들을 초대해 집들이도 했다. 

서울 신림동 신혼집에서 집들이 



현관문을 열면 2층 주인집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는 반지하 집이었지만, 우리의 정식(?) 신혼집에 마냥 행복했다. 

전에 살던 사람들이 이사 나간 후 곰팡이 한가득 발견해도, 이런 것도 경험이라며 벽지를 사다가 직접 도배했다.

한겨울에 샤워해도 더 이상 입김이 나오지 않았고, 동파가 두려워 물을 조금씩 틀어놓지 않아도 되었다. 

게다가 나의 직장인 강남 그리고 가산디지털단지로 옮겨진 남편의 직장과 가까워 출퇴근이 훨씬 편했다. 


가끔씩 금요일 저녁에는 집 근처 선술집에서 맥주 한 잔도 했다. 

주말에는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요리하는 것이 

일요일에는 둘레길을 걸으며 도란도란 대화 나누는 것이 

이 모든 것들이 꿈만 같았다. 


마치 새 아파트 분양받은 것 마냥 행복했다. 


서울 신림동 신혼집 




천호동 원룸과 신림동 반지하 집, 

그 3년간의 신혼 기간 동안 가난한 우리 부부는 싸운 기억이 없다. 


뚜벅이인 우리는 

천호동에서는 한강을 

신림동에서는 둘레길을

우리 집 앞마당 삼아 돈 안 드는 데이트를 즐겼다. 


양가 부모님의 도움 1원도 받지 못해 이런 신혼집들을 전전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행복했었던 건 

우리 스스로 번 돈으로 조금씩 나은 집으로 발전해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다음 집은 화장실이 2개나 되는 33평 새 아파트 전세로 들어갔다!







누군가 나에게 10대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No라고 단호히 말한다. 

20대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꼭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면, 

우리의 서울 신혼집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단점들이 그득한 그 신혼집들의 기억이 

행복의 순간으로만 기억되는 걸 보면 

그때의 나는 이 가난한 중국인 남자와 함께라서 행복했나 보다. 



다행이다. 


가난한 신혼집이지만, 

행복도 가난하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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