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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 J Apr 04. 2022

월급 대신 육아휴직급여가 들어왔다.

1n차 직장인, 초보 엄마로 업종 변경했습니다.

 어느날, 집에 사람이 하나 더 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막연하게 이제 셋이여도 좋을텐데..하는 생각을 하던 시기였고, 회사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았다.

 초기에서 중기를 맞이하는 시점에 가고 싶었던 곳에서 오퍼를 받았다. 임신 중이고 이직을 하게 되면 출산,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지 물어봤는데 난색을 표해주셨다. 그래도 축하는 받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쉽고 복잡한.. 씁쓸한 감정이 올라왔지만 지금이 제일 좋은 시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날은 쪼금 눈물이 나서 구석에서 울고 나왔다.


 아이가 태어났다. 조그만 핏덩이는 낯선 세상이 무서워서 울고 어설픈 엄마 품이 불편해 울었다. 조리원 퇴소하고 집에 와서는 낮에는 산후도우미 이모님의 도움으로 잠을 자는 일이 반복 되었다. 이모님은 "애기 엄마, 밥은 먹어야지. 먹고자."라고 나를 깨웠고, 나는 모유양이 줄까봐 비몽사몽으로 미역국에 밥을 말아 넘겼다. 밤에는 아이의 작은 뒤척임과 에엥 소리에 촉각이 곤두세워져서 잠을 쉽게 들지 못했다. 계속 아이의 울음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출근해야하는 배우자가 잠을 못잘까봐 아이가 울면 아기띠를 하고 거실을 돌았다.

 산후도우미 이모님과 헤어지는 날, 이모님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저 어떻게해요? 어떻게 하죠? 혼자 잘 할 수 있을까요? 시크하고 쿨한 이모님은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한다득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주셨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애기 엄마, 씩씩하게 잘 할 수 있어. 잘 했잖아. 괜찮아."




  아이가 크면 다시 일할 수 있을까. 양가 부모님은 모두 지방에 계셨고, 우리 내외는 둘다 지방 출신으로 직장 때문에 서울에 자리를 잡은 케이스였다. 서울에서 생활한지 1n차, 직장생활만 오래 했던 내 주변에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사람도 임신한 사람도 별로 없었다. 아마 일하느라 그랬거나 일 하다보니 그런거겠지. 어쩌다보니 나는 회사에서 나와 전업주부의 길을 가게 되었다. 회사에서 출산, 육아휴직은 쓸 수 있도록 협의를 해줬고, 그걸로 만족 하기로 했다. 난 더이상 월급을 받지 않고 육아휴직 비용을 받으며 생활을 하게 되었다. 마치 사회초년생 때 경험한 계약직 같은 느낌이였다. 정규직으로 살다보니 잊고 지냈던 계약직의 불안한 미래가 내 앞에 펼쳐졌다.

  계약 종료가 되면 나가고 있던 고정 지출은 어떻게 해야할까. 이젠 우리 둘의 미래가 아니라 셋의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데 여기서 더 어떻게 줄여야 하지. 계약종료가 될지도 모르고 잡아둔 고정지출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 집 주인이 전세를 연장해주기로 했다. 숨통이 조금 트여진 느낌이였다.



 아이가 울음으로 모든 의사를 표현하던 시기를 지나가면서 패턴이 잡히기 시작했다. 수유하는게 익숙해졌고, 밤에도 좀더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잠을 좀더 잘 수 있게 되면서 심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물론.. 여유는 오래가지 못했다. 아이는 여전히 울음이 많았고, 목청도 좋았다.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라 아이의 울음소리가 층간소음으로 문제가 될까봐 또 업무 마치고 집에 들어온 배우자가 쉬지 못할까봐 나는 아이가 울면 아기띠를 메고 아이를 안았다. 아이의 울음이 쉽사리 쳐지지 않던 날은 나도 같이 울었다. 아가야, 그만 울어주라. 제발.. 나도 너무 힘들어. 울면서 사정했다. 그냥 그러며 살았다.

 아이가 조금 더 크고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동네에 비슷한 개월 수의 아이도 생겼고, 조리원동기들과 문화센터도 나갔다. 점심메뉴를 고민하고 커피를 마신다. 수유, 기저귀 갈기, 유아차 끌고 다니기에 이어 장도 볼 수 있는 마트 문화센터는 정말 최고다. 친구네 집에서 아이들은 매트에 펼쳐두고 남이 해준 음식, 남이 타준 커피, 달달구리를 마시며 수다를 떤다.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내가 여유가 생기니 아이가 더 이뻐지는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반짝거렸다. 반짝이는 쬐끄만 인간이 날 보며 웃는다. 한번도 걸어보지 못한 발바닥에 입을 맞추고, 젖 물고 졸고 있는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엄마가 잘할께. 열심히 해볼께.



생각해보면 나는 육아를 그냥 '업무'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1n차 직장인의 머리에는 말이 통하는 파트너(물론 아닌 경우도 있지만)과 주어진 시간 내 해야할 일들을 하고, 피드백이 주고받아 빠른 시간 내로 일을 마무리 하는 프로젝트만 가득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파트너와 피드백도 마감도 없는 긴 프로젝트를 하는 그런 것은 해본적이 없었다.   

 근데 지금 그런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매우 천천히 피드백이 오는 파트너와 함께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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