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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아침 Apr 13. 2022

작은 스승님 감사합니다.  

여섯 시에 일어난 아들이 배고프다고 해서 시리얼을 국그릇에 쏟아주고, 우유를 부어 주었다. 한식파인 나는 며칠 전 끓여놓은 칼칼한 순두부찌개를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내 아침이 되기 전 어제 베란다에 널어놓은 빨래가 말랐는지 확인하러 갔다. 역시나 밖에 비가 내려서 인지 옷들은 축축했다. 오늘 입을 생각이었던 레깅스를 만져보는데 열어놓은 베란다 창 밖으로 한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아파트 외벽 근처에 할머니 허리 정도 오는 나무가 한 그루가 서 있다. 할머니는 한 손에는 불룩하게 튀어나온 속이 비치지 않는 봉지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연둣빛을 뽐내려는 나뭇잎을 뚝뚝 떼어내고 있었다. 혹시나 시든 나뭇잎을 솎아내는 관리사무소 직원분 일까 했는데 시각은 6시 30분이요. 내가 익히 아는 얼굴이 아니었다. 갓 봄이 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잎이 시들었을 리는 없을 것이다.     

 

베란다에서 한참이나 서서 할머니를 지켜봤는데, 할머니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시며 여린 나뭇잎들을 떼다 못해 잡아 뜯으셨다. 할머니 옆을 지나가던 한 여자분은 할머니의 행위에 의문을 품은 채 여러 차례 고개를 돌려가며 쳐다보셨다. 아마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먹을 수 있는 나뭇잎이라서? 찻잎으로 쓸 수 있는 나뭇잎이라서?     


코로나가 터지기 전 봄에 놀러 간 언니의 아파트에서는 조경으로 꾸며놓은 화초를 뽑아가거나 예쁜 돌을 주워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내가 지켜보고 있는 할머니는 뿌리까지 뽑아가지 않는 것을 보니 식용의 목적이 강한 듯 보였다. 시리얼을 먹고 있는 아들에게 밖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려주니 들고 있던 숟가락을 얼른 놓고 거실 창쪽으로 뛰어갔다.   

  

“엄마, 할머니가 계속 나뭇잎 뜯어.”

“계속 뜯으시네. 근데 쫑아, 할머니가 나뭇잎을 뜯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엄마는?”


아파트에 심어진 나무는 아파트 주민들이 다 함께 보는 것인데 누군가 나무를 아프게 하는 것은 잘못된 행위라고 말해주었다. 아들은 어찌 생각하는지 다시 물었다.     


“할머니가 산소를 줄어들게 만들어서 난 나쁘다고 생각해.”      


갑자기 산소라는 말이 튀어나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답변을 하고 다시 시리얼을 먹기 시작한 아들에게 왜 산소가 줄어드는지 다시 물었다. 이유인 즉 나뭇잎에서 산소가 나오는데 할머니가 뜯어버리면 그만큼 산소가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추가로 나무를 아프게 하는 것도 나쁘다고 했다. 

    

아이와의 짧은 대화였지만 머리가 띵했다. 나는 단지 나무를 내가 사는 아파트의 자산으로 밖에 보지 않았는데, 아이는 나무를 그 존재 자체로 보았다. 아무리 내 입에서 자연을 보호하고 사랑하자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매일 보는 나무조차도 하나의 존재로 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마음에서 나는 그동안 무엇을 지나쳐 갔던 것일까?      


일곱 살 아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좀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 마음에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지도 모른 채. 아들은 시리얼을 더 달라고 한다. 오늘은 작은 스승 덕분에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되는 아침이다. 작은 스승님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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