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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아침 Apr 15. 2022

일곱 살 아들 사춘기인가?

아들이 하원하고 집에 오면 간식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일방적으로 질문을 하니 나눈다 보다는 아들은 질문세례를 받는 편이다. 유치원에서 뭐하고 놀았는지, 뭐가 재미있었는지, 속상한 일은 없었는지와 같은 아이는 궁금하지 않지만 나는 궁금한 것들에 대해서 물어본다.  

   

작년만 해도 아들은 질문하기도 전에 유치원에 있었던 이야기를 했었다. 올해는 좀 다르다. 뭐랄까. 물어보기 전에는 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다. 물어보면 ‘좋았어.’‘없어.’라고 딱 떨어지는 단답형으로 대답을 한다. 이해를 하기도 전에 쏟아지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몰랐는데 가뭄으로 물줄기가 말라버린 듯 수다스러움이 줄어든 아이가 낯설다 못해 걱정이 앞선다.     


걱정스러운 마음 때문인지 그러지 말아야 하면서도 유치원에서의 일과를 꼬치꼬치 캐묻게 된다. 어제는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니 그 전날 들었던 비슷한 답변이 돌아왔다. 

     

“쫑아, 엄마가 유치원에서 뭐 했는지 물어보는 거 싫어?”

“싫지는 않은데.... 엄마가 일 년 동안 어차피 계속 물어볼 거면 안 물어봤으면 좋겠어.”     


귀찮아하는지는 알았는데 이 정도로 싫어하는지는 몰랐다. 질문 몇 개 하지 않았는데, 일 년간 물어보지 말라하니 굉장히 서운했다. ‘아 그래.’라고 답을 하고 아들이 먼저 말하고 싶으면 언제든 말하라고 쿨하게 받아쳤다.     

  

무슨 무슨 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은데, 이상하게 아이 앞에서는 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척’을 많이 한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혼자 놀았다고 하면 혼자 노는 것도 재미있지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아이에게 말해준다.      


솔직히 말하면 ‘혼자 논다’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철렁한다. 친구가 없나? 혹시 괴롭힘을 당하나? 등 온통 부정적인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채운다. 아이가 혼자 놀게 되면 자신에게 집중해서 더 행복할 수 있다는 문장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 문장을 보고 혼자 노는 것의 중요성을 끄덕끄덕했는데 다수가 있는 공간에서 혼자 놀았다는 아이의 말은 나에게 불편하다 못해 괴롭다. 내 앞에서 혼자 놀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데 말이다.   

   

오늘 도서관 수업을 같다가 같은 유치원에 보내는 분을 만났다. 우리 집 아이의 사정을 말하고 그 집 아이는 어떤지를 물어보니 상황은 비슷했다. 가끔 유치원에서 겪은 불편한 일에 대해서 이야기할 뿐 그 집도 엄마의 질문을 귀찮아한다고 했다. 같은 처지여서 인지 그분의 서운한 마음이 내게도 느껴졌다. 아이가 자라면 한 고비 넘는 게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다. 어려움이 덜해진 부분도 있지만 한 고비를 지나고 나면 늘 더 큰 고비가 오는 느낌이다. 난 간장종지만 한 그릇의 사람인데 가끔은 나의 그릇에 넘치는 일을 겪기도 한다.      


나름 육아서적도 보고, 상담 관련 수업을 들어도 타인의 문제에 대해서는 객관화를 하는데, 아이와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그게 잘 안된다. 어떤 분은 내게 사춘기 아이와 평화롭게 지내는 방법은 아이가 말을 걸기 전에 말하지 않는 거라고 하셨다. 솔직히 아이의 사춘기를 잘 보내는 유일한 방법이 그거라 해도 그렇게 할 생각을 하면 마음이 쓰리다.       


곧 아이가 올 시간이다. 오늘은 어땠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꾹 참아야겠다. 기다려야겠다. 아이가 먼저 말할 때까지. 일곱 살 우리 아들. 사춘기는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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