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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아침 Apr 20. 2022

유치원 땡땡이!

내게 잘하는 게 하나 있다면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꾸준하게 한다는 점이다. 학창 시절에는 몸이 심하게 아픈 때를 제외하고는 학교에 절대 빠지지 않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그렇게 보냈다. 수업에 빠지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고, 대학교 때는 그 흔한 땡땡이를 해 본 적이 없다. 날이 좋아, 자유를 찾아서라는 이유로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 친구들을 이해하기가 버거웠다. 학생이라면 당연히 신청한 수업에 들어와야라는 생각이 늘 앞섰다.


월요일 새벽. 주말에 친정 가서 고추를 심느라 무리해서인지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입에서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하루 종일 쪼그려 앉아서 고추 모종을 구멍에 넣고, 흙을 덮었다. 당일에는 괜찮더니 하루가 지나서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일흔을 향해서 가시는 엄마는 당일만 아프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시는데 한세대는 젊은 나는 약을 먹여야 할 정도로 극심한 근육통에 시달렸다.    

  

몸이 아프니 아들을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서 현관문을 열고 나가기가 버겁게 느껴졌다. 아들도 오랜만의 외갓집 나들이로 피곤해 보여 ‘유치원 땡땡이’를 치기로 혼자 마음먹었다. 침대에서 내 몸을 일으키고, 다시 소파에 몸을 눕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눈만 멀뚱멀뚱 뜨고 일어날 아들을 기다렸다.     

 

일곱 시가 넘으니 아들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잠도 덜 깨서 거실의 환한 불빛에 눈을 비비며 적응하는 아들에게 유치원 땡땡이를 치자고 했다. 눈에는 잠이 묻어도 귀에는 묻지 않았는지 바로 ‘야호’라고 소리를 질러댄다. 아들의 격렬한 기쁨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쫑아, 엄마가 오늘은 몸이 너무 아파서 쫑이랑 같이 놀기는 해도 엄마가 많이 누워있기도 할 거야.”     


유치원을 안 간다는 사실이 좋은지 쫑은 알았다고 하며 전날 밤에 카프라 블록으로 만들다 만 건물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아들은 깔아놓은 소음 방지용 매트로 집을 만들기를 좋아한다. 한 일 년간은 매트가 바닥에 눕혀 있는 게 아니라 세워져 있는 모습을 봐야 했다. 집 만들기를 좋아해서 작년 크리스마스때 나무 블록을 사줬는데 흥미를 보이지 않다가 최근에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역시 뭐든지 때가 있나 보다.

    

거실 소파에 누워 아들이 놀고 있고 있는 모습을 보다가 까무룩 잠이 들어버렸다. 스스로가 아니라 아들이 ‘엄마, 아침 먹자’라는 소리에 깼다. 혼자 지루해하지 않고 한 참 재미있게 놀아서 인지 아들 얼굴에 빛이 나는 듯 보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내가 땡땡이를 치고 혼자 노는 시간이 있었더라면 내 얼굴에도 빛이 났을까?   

   

월요일 하루 종일 아이들이 놀고 싶은 대로 노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블록이 시시해지면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식이었다. 오후 3시가 되니 실내에서 노는 게 지겨운지 밖으로 나가자고 재촉을 했다. 얼마 전에 아는 언니랑 산에 갔더가 뱀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 가서 뱀 사진을 찍자는 것이다. 아들의 태몽도 뱀, 나의 태몽도 뱀인데 나는 뱀만 보면 온몸에 닭살이 돋고 다리를 떨 정도로 뱀을 싫어한다.


엄마만 뱀을 보고 자기는 못 보게 한다는 아들에게 뱀이 엄마가 봤던 그 자리에 없을 수 있다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하루 반나절 넘게 잘 논 아들이기에 보기 싫은 뱀을 보러 나지막한 산에 갔다.    

  

결국 뱀은 보지 못했고, 아들은 다음번에는 꼭 뱀 사진을 찍겠다고 다짐을 했다. 나의 몸이 피곤해서 급작스레 땡땡이를 친 월요일. 생각보다 괜찮았다. 정해진 틀 밖에서 자유롭게 노는 아들의 모습을 보니 이런 하루도 나쁘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번개 땡땡이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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