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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아침 Apr 26. 2022

아들의 유치원 땡땡이 계획

지난주 일곱 살 아들과 유치원 땡땡이를 쳤다. 생각했던 것보다 하루를 신나게 보내서 일주일에 한 번 땡땡이를 치자고 계획을 세웠다. 땡땡이는 갑자기 쳐야 제 맛일 텐데 규칙적으로 유치원에 빠진다고 생각하니 뭘 할지가 가장 고민이다. 즐거움을 나누면 두 배가 되고 고민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는 생각에 하고 싶은 일을 정하는 것을 전적으로 아들 몫으로 넘겼다. 나누지 않고 나에게서 완전하게 덜어내니 가뿐하다 못해 즐겁기까지 하다. 나의 고민을 받은 아들은 엄마의 짐을 넘겨받은지도 모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생각에 한껏 들떠 있다.      


급기야는 땡땡이를 치기로 한 수요일이 되기 전 월요일, 화요일에 뭐할지 유치원에서 고민을 해오겠다는 선언도 했다. 매일 아침 유치원에 가는 목적이 수요일에 무엇을 할지를 고민하는 게 되어버렸다.      


어제 아들은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나에게 달려왔다.     


“엄마, 엄마, 내가 수요일에 뭐할지 정했어. 내가 종이에 써왔는데, 모르는 글자가 있어서 그것은 못썼어.”    

 

쓰지 못한 글자가 마음에 남았던지 집으로 가는 내내 쓰지 못한 글자 이야기를 계속했다. 좋아하는 놀이터도 마다하고 아들은 집으로 곧장 향했다. 집에 도착해서는 내가 들고 있던 자신의 책가방을 빼앗듯 가져가더니 진귀한 보물을 꺼내는 듯 자신이 쓴 종이를 꺼냈다.      


아들은 충청남도 과학교육원에서 청이 빠지고, 곤충원을 공충원으로 쓴 종이를 내밀었다. 종이를 내밀면서 '청'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더 어려운 글자는 쓰고 청을 쓰지 못한 아들이 좀 신기하다. 아들에게 빠진 글자를 알려주고, 두 곳 중 한 곳 밖에 갈 수 없다고 알려주었다. 둘 다 가면 좋겠지만 오전에 병원 예약을 해놓았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자신보고 하루의 계획을 세우는 것을 맡겨놓고 말을 바꾼 엄마를 원망할 줄 알았는데, 아들은 '알았다'하고 과학교육원에 가겠다고 했다.      


아들의 선택이 있기 전 그곳을 갈 거라는 사실을 이미 나는 알았다. 나의 영향은 절대 아니고 남편의 영향으로 아들은 블록, 과학영상, 만들기 등을 좋아한다. 남편이 바쁘지 않을 때는 둘이 앉아서 레고며, 다양한 블록으로 이것저것 만들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런 성향의 아들은 과학교육원에 가면 두 시간 넘게 이것저것 만져가면서 돌아다닌다. 같은 곳을 열 번넘게 갔는데 아들은 늘 가면 새롭다는 듯이 즐겁게 논다.  

    

가끔은 아들의 이런 태도가 부럽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두 번 먹으면 큰 감흥이 없는 나로서는 아들과 함께 과학교육원에 가면 아들처럼 눈이 반짝거릴정도로 즐겁지는 않다. 나의 이런 감정을 대놓고 드러낼 수 없기에 즐거운 척, 신기한 척 연기를 많이 한다. 나랑가도 또 가고 싶다 하고, 즐겁다 하는 것을 보면 나의 연기력이 수준급인 것은 분명한 듯싶다. 아닌가? 아들이 나에게 연기를 하는 건가?      


아침에 유치원 버스를 타면서 아들은 내일 이야기를 한다. 계획된 땡땡이가 어떻게 내일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아들과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유치원 안 가는 날을 <유치원 땡땡이>로 이름을 붙였다. 내일 아들과 시간을 보낼 생각에 설레기도 하지만 유치원에 안 가는 대신 아들이 늦잠 좀 자면 좋겠다. 오늘 좀 늦게 재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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