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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아침 Apr 12. 2022

차는 방전, 나는 충전

지하 1층 버튼을 누른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출입구를 지나니 나의 차가 보인다. ‘띠릭’ 차키를 가볍게 누르고 한쪽 어깨에 삐딱하게 맨 가방을 차문을 열자마자 옆좌석에 던졌다. 앉자마자 차키를 넣고 돌렸으나 차는 피시식 소리를 낼 뿐 엔진에서 나오는 소리가 전혀 없다. 계기판을 보니 차 트렁크 열림 경고등이 떠있다.    

  

어제 도서관에 갔다가 트렁크에 넣은 책을 빼내고 문을 잘 닫지 않은 것이다. 작년에 차를 방전시킨 적이 몇차례 있기에 남편이 한번만 더 방전시키면 점프 배터리를 사서 내가 직접 죽은 자동차를 살려야 한다고 엄포를 했더랬다. 잘못한 거는 감추지 못한 성격이라 남편에게 긴급출동 서비스를 불러야 한다고 문자로 보냈다. 눈물 표시와 함께 점프 배터리를 바로 주문하겠다는 답변이 도착했다.     

 

기계라면 질색을 하는 성격이라 방전되지 않도록 조심했는데 졸지에 앞으로 방전되면 내가 스스로 충전을 해야 할 판이다. 자동차 보험회사에 전화를 기다리니 15분이 채 되지 않아서 기사님이 도착하셨다. 가끔 원하는 서비스를 빠르게 받으면 기분이 좋지만 신속한 서비스 제공을 위해서 서둘러야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썩 편하지 않다. 10시에 시작하는 수업에 가야 했기에 차를 충전하고 20분 정도만 운행을 해도 되는지를 물었다.       


부족할 수 도 있으니 5분 이상은 더 시동을 켜 놓으라고 하셨다, 충전을 하니 9시 30분. 늦지 않게 가려면 조금은 빠듯한 시간이다. 수업에 조금 늦더라도 차를 다시 방전시킬 수 없어 도서관으로 향하는 가장 먼 길을 택했다. 집에서 10분만 가면 호수가 있기에 혼자 여유로운 드라이브를 즐긴다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차를 운전하며 길가에 핀 벚꽃을 바라보니 촉박했던 마음이 누그러진다. 사라져 가는 부정적인 감정의 자리에서 어차피 드라이브하는 거 수업 땡땡이를 칠까라는 생각이 꾸물거린다. 머릿속에서는 갈등하도록 내버려 두고 눈으로 길가에 핀 벚꽃을 구경했다. 바람이 부니 눈처럼 벚꽃이 쏟아져 내린다. 겨울에 내리는 눈보다 봄에 내리는 꽃눈이 내 눈에는 더 사랑스럽다. 잡으면 손바닥에서 사르륵 녹는 눈보다, 한참 동안 내 손바닥에서 제 모습을 보여주는 꽃눈에 더 정이 간다.      


꽃을 보는 동시에 30분간 운전을 해야 하기에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속도를 내지 않았다. 다행히 차가 많지 않아서 눈치 보지 않고 원하는 속도로 갈 수 있었다. 호수에 다다르니 초록빛이 듬성듬성 드러난 벚꽃 나무들이 보인다. 하얀 꽃송이가 가득한 벚꽃 나무도 예쁘지만 초록 이파리를 안고있는 나무에 더 끌린다. 가득 차 있는 것보다는 좀 비어 있는 모습, 그 빈자리를 새로움이 채우는 모습이 내 마음에 더 닿는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에 살짝 취해있으니 방전이 된 것은 나의 마지막 벚꽃놀이를 위함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밀려든다. 나란 인간, 기분이 좋으면 나 좋은 대로 생각한다. 꽃에 취해서일까? 강사 선생님께 ‘오늘 하루 봄꽃이 불러서 땡땡이칩니다.’라고 문자를 보내고 싶어졌다.     


매 수업시간에 모든 것을 불태우시는 강사님이시기에 쓰고 싶은 문자를 마음에서 지우고 다시 도서관으로 차를 돌렸다. 원하지 않은 일에 맞닥뜨렸을 때 공이 벽에 통하고 튕기듯 방향을 바꾸면 다른 길을 만난다. 행동도, 생각도 그렇다. 통.........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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