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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아침 Nov 17. 2023

엄마한테서 어떤 향이 나?

날씨가 춥다. 추우면 내 등에 달팽이 집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자꾸 집에서 나가지 않으려 한다. 어제는 밖에서 비가 내렸다. 내리는 비를 뚫고, 우산을 쓰고 돌아다닐 생각을 잠시 했지만, 생각을 색종이 접듯 반듯하게 접어서 한쪽으로 치워버렸다.


초1 아들은 요즘 부쩍 전보다 잘 먹는다. 학교에서 오자마자 '엄마, 나 왔어.'라는 말보다는 '엄마, 오늘 간식 뭐야?'를 먼저 묻는다. 엄마가 좋아? 간식이 좋아?라는 질문을 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른다. 유치해지지 않으려 하는데 가끔 이상하게 아이와 있으면 평소의 나라면 하지 않을 행동과 말이 쏟아진다. 생각과 말이 어려지는 순간이다.


아들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간단하게'라는 말을 자주 쓴다. 이 말을 어디서 배웠는지 출처는 모르겠으나 오늘도 '엄마, 우리 간단하게 국수 먹을까?'라고 말을 한다. 특히, 본인이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꼭 '간단하게'를 꼭 써서 말한다.


'엄마, 간단하게 짜장면 먹을까? 엄마, 간단하게 볶음밥 먹을까? 엄마, 간단하게 치킨마요덮밥 먹을까?'


그렇게 말하는 모양새가 웃겨 피식 웃지만, 간단하게 만들어야 하는 사람은 '나'이에게 혹시 모를 아들의 '미래의 여자친구'를 위해서 '간단하게'라는 말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멸치와 다시다를 넣어서 육수를 우려내는 대신 정말 간단하게 시중에 판매하는 '다시 육수'를 넣어서 국수를 끓였다. 애호박과 당근을 얇게 채 썰고, 엊그제 끓여놓은 삼계탕도 섞고, 계란도 풀었다. 간이 맞는지 아들에게 살짝 주니 '딱'이라고 하며 엄치를 치켜세운다. 이 맛에 요리를 한다.


삶은 국수면에 뜨거운 국물을 퍼서 올려주니 아들은 후루룩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두 볼이 빵빵하게 먹는 아들이 귀여워서 아들의 옷의 냄새를 킁킁 맡았다.


"쫑아, 너한테서 상큼한 풀향이 나."


식물을 좋아하는 자신에게 풀향이 난다라는 말을 해주니 아들은 한껏 기분이 들뜬 모양이었다. 배시시 웃으면서 내 등에 자신의 코를 대고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한 번 킁킁, 두 번 킁킁, 세 번을 킁킁거리고 나니 '아르키메데스'가 새로운 사실을 알았을 표정으로 눈을 번뜩이면 말을 했다.


"엄마, 엄마한테는 앞치마향이나."


자신의 답변이 만족스러운지 아들은 칭찬해 달라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정말 예상밖의 향이었다. 앞치마 향이라니! 도대체 앞치마 향은 어떤 향이란 말인가!


"앞치마 향은 어떤 향이야?"

"이 냄새, 저 냄새 섞인 향이지."


냄새가 섞여서 향이 되다니. 어깨 쪽에 걸쳐 있는 옷을 당겨 나도 킁킁 냄새를 맡아보았다. 국수냄새만 진하게 올라왔다. 아, 나도 향수를 뿌렸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서 혹시나 해가 될까 봐 뿌리지 않았는데, 이제는 다시 사고 싶어 진다. 나한테 꽃향, 풀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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