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은아침 Dec 10. 2023

아들 탐구 보고서

엄마, 말 들리니?

금요일 오후, ‘띠링’ 문자가 왔다.

    

‘상호대차자료가 대출가능합니다. 대기일:23/12/12(’백앤아.2,달콤)'    


쫑(아들 애칭)이 학교에서 읽고 싶지만 매일 같이 다 팔려서 빌리지 못한 책이다. 쫑은 대출이 된 책을 꼭 마트에서 매진된 물건을 말하는 것처럼 '다 팔렸다'라는 표현을 고집한다. 아마도 학교 사서 선생님이 인기도서가 없을 때마다 '다 팔렸어'라고 말을 해서 아들 입에도 붙었나 보다.     

 

상호대차 한 책이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니, 연산문제집을 세월아 네월아 풀고 있던 아들의 속도가 빨라지더니 암산으로 푸는 경지를 보여주었다. 이럴 때 배신감이 밀려온다. 하라고 할 때는 늦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갖다 대더니, 빨리 끝내야 하는 이유가 생기니 태도가 급변한다.  

   

아들을 사로잡은 책-백앤아

나도 누군가 시켜서 하면 하기 싫은 마음이 크다. 아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의 말보다는 자신의 이익(?) 추구에 앞선 행동을 할 때 마음이 서운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책을 빨리 빌려와야 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문제집을 휘리릭 풀더니, 알아서 척척 이를 닦고, 알아서 척척 양말을 신고, 알아서 척척 점퍼를 입고, 알아서 척척 운동화를 신고, 현관 앞에서 나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엄마, 빨리 가자. 엄마, 엄마, 엄마.”     


밖에 나가는 김에 분리수거장에 버릴 쓰레기를 챙기는 사이,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끝낸 아들은 말로 나를 쪼기 시작했다. 쓰레기 챙기기도 힘든데 아들의 쉼 없는 '엄마'소리에 버럭했다.

     

“쫑, 준비가 다 되었으면 기다리든지, 엄마 쓰레기 챙기는 거 알면 와서 도와줘야지.”

“엄마, 쓰레기 챙기고 있었어?”(아들의 눈빛이 순수하다......)     


아들을 키우면서 가끔 '얘가 엄마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그러나?’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을 자주 맞이한다. 특히 본인이 뭔가에 집중하고 있거나, 본인이 해야 할 일 목록에 첫 번째와 두 번째가 격차가 크면, 첫 번째 이외에는 아무것도 신경을 쓰지 않을 때가 있다. 오늘도 딱 그런 날이다.    

  

재밌는 책이 일일일일순위이기 때문에 아들 앞에서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데, 가끔은 아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레드선'을 하듯 엄지와 중지로 ’딱딱‘소리를 내거나, 방청객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처럼 손뼉을 친다. 저만 이러고 지내는 것은 아니겠지요?

      

엄마의 모습이 투명에서 색이 발라지니 아들은 그제야 잠잠해지고, 플라스틱이 들어있는 봉지를 나눠 들었다. 엄마의 버럭에 현실 세계로 귀환한 아들은 조용히 내 뒤를 따랐다. 분리수거장에서 볼일이 다 끝나고 양손이 가벼워지자 아들은 말한다.      


“엄마, 빨리 가자. 엄마, 엄마, 엄마.”


REPLAY

작가의 이전글 아들의 특이한 취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