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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아침 Mar 05. 2024

용기, 용기 내다 4-아이를 위한 엄마표 이야기

다음 날 아침, 용기는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섰어요. 영웅이 악당을 물리치러 가기 전 비장한 표정을 짓듯이, 두 눈에 힘을 세게 주었어요. 오늘 영석이에게 할 말이 있거든요.  

    

교실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자, 고영석이 보였어요. 학교에 오면 제일 시끄러운 고영석인데 말 한마디 없이 두 팔로 얼굴을 감싼 채 앉아 있었어요. 용기는 영석이에게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서 바로 말하려다가 참기로 했어요.    

 

조금은 영석이가 자신이 겪었던 감정을 느꼈으면 했거든요. 영석이는 자신의 뒷자리에 용기가 의자를 빼서 앉는 소리를 듣고 움찔거렸어요, 영석이는 용기를 기다렸던 거예요.     


수업이 시작되고, 오늘따라 말 한마디 없는 영석이가 이상한지 선생님과 친구들은 영석이에게 괜찮은지 물었어요. 용기는 그런 영석이가 조금은 불쌍했어요. 점심을 먹고 교실에 오니 입맛이 없다며 밥을 먹지 않은 영석이가 아침과 똑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어요. 점심을 먹고도 금방 배고파서 간식까지 챙겨 오는 고영석이, 밥까지 먹지 않고 있었던 거예요.      


“야, 고영석.”

“어, 왜…. 용기야…. 너…. 그거 말할 거야?”

“뭘?”

“그 있잖아. 내가 병원에서 잠시 울었던 거.”

“잠시?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말 안 했으면 좋겠어.”

“말할 생각도 없었어. 그런데 너 작년에 내가 주사 맞고 울었다고 엄청나게 놀려댔잖아. 그거에 대해서 할 말 없어?”

“정말, 미안해. 처음에는 놀릴 생각 없었는데, 나도 그날 울었거든. 혹시나 네가 나 운 거 알까 봐. 혹시나 네가 나 놀릴까 봐. 그래서 먼저 놀렸어. 정말, 미안해.”     


용기는 자신이 할 생각도 없는 일을 먼저 판단하고 행동을 한 영석이가 황당했어요. 그래도 용기는 영석이랑 똑같은 행동을 하지 않기로 했어요.      


“영석아, 난 너 놀릴 생각 없어. 누군가를 용서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어. 솔직히 아직도 기분은 나쁘지만 네가 나한테 사과했으니 사과받아줄게.”

“고마워, 용기야.”

“그런데 나 어제도 주사 맞고 울었어. 그런데 이젠 하나도 창피하지 않아. 내가 주사 맞는 건 여전히 무섭지만, 무섭지 않은 일들도 많이 할 수 있거든. 


용기는 모든 일에 슈퍼영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분명 빨간색 망토를 걸친 슈퍼맨도, 검은색 망토를 걸친 배트맨도 용기를 낼 수 없는 일이 있을 테니까요. 용기는 표정만큼은 슈퍼영웅처럼 당당하게 교실을 나갔어요.     


영석이는 만수처럼 같은 눈빛으로 용기를 바라보았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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