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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아침 Dec 11. 2024

꽃상여가 지나간다.- (완결)

해는 뜨고, 산사람은 일어난다.    

  

아버지는 할머니를 위해서 꽃상여를 준비했다. 슬픔으로 묵직한 안개가 낀 집 앞에 화사한 종이꽃으로 장식된 꽃상여가 있다. 끝이 보이지 않게 놓인 하얀 국화꽃과 오색찬란한 종이꽃의 대비는 누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있는지 헷갈리게 만들어 놓았다. 슬픔을 허탈하게 만들 정도로 꽃상여는 화려했다.  

   

할머니를 품은 관이 내려온다. 짊어지는 사람 편하여지라고 할머니는 한없이 무게를 줄이셨다. 끙끙 소리도 나지 않은 관이었다.     


“야, 정희할매, 꽃상여 화려하다.”

“좋은 날 가시더니, 좋은 거 타고 좋게 가시는구먼.”     


나이 지긋한 마을 어르신들이 한두 마디 거드셨다. 자식을 잘 두어 꽃가마를 탄다고, 자기들은 화장되어서 뿌려질 텐데, 정희할매는 꽃상여 타고 간다고. 죽고 난 후를 생각하시는 어르신들은 부러운 눈으로 향기 없는 꽃상여를 바라보셨다.     


꽃상여는 집에서부터 묘자리가 있는 산까지, 아버지의 친구분들이 메셨다. 집에서 무덤이 보이더라도 걸어서 가는 길은 가깝지 않았다. 중간에 쉼이 필요했다. 먼저 멘 사람이 쉬면, 뒤따라 오던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꽃상여는, 걸음마를 갓 뗀 아이처럼 그 속도가 더뎠다. 세상을 향해서 나아가는 걸음과 달리 꽃상여는 세상에 좀 더 머무르고픈 걸음이었다.     


할머니는 간다. 꽃상여에 매달린 꽃들이 바람에 휘날린다. 꽃상여 주변으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가득하다. 벌과 나비를 꼬일 수 없는 종이꽃들이다. 아버지, 어머니, 오 남매가 쫓아오지 못하도록 꽃에는 향기가 없다.      


꽃상여를 뒤따라가는 어머니는 물기 없는 퍼석퍼석한 입술을 떼셨다.    

  

“야, 니 할머니 참 날을 어찌 그렇게 알고 돌아가신 지 모르겠다. 바쁜 날 쏙 빼고, 일 다 해놓으니 돌아가셨어. 야, 네 할머니는 그런 할머니여.”     


하늘은 미치도록 맑고, 날은 미치도록 따뜻했다. 나는 꽃상여를 바라보면 속삭였다.   

   

‘할머니, 미안해요. 아버지한테, 어머니한테, 오남매한테, 나한테 어떻게 했는데, 병원에서 할머니에게 품은 마음들 너무 미안해요. 평생 기억할게요. 할머니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할머니를 떠올릴게요. 제가 할머니가 되어도 할머니를 영원히 할머니로 기억할게요. 잘 가세요. 정말 미안해요. 제가 품었던 감정 할머니 잘못이 아닌 제 잘못이니 절대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부디 잘 가세요......’    

 

할머니는 오래전부터 옷장 맨 아래 칸에 누군가 입혀줄 수의를 준비해놓으셨다. 죽음이 우리에게 닿을세라 다른 옷장 칸은 열어도, 맨 아래 칸은 손도 못 대게 하셨다. 궁금해서 열어본 서랍에는 할머니가 훗날 입었던 그 옷이 있었다.  

    

시집오실 때 꽃가마 타지 못했던 할머니는 자신이 준비한 한없이 가벼운 옷을 입고 꽃상여를 타고 가셨다.      

꽃상여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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