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게 육아를 할 줄 알았습니다.

'아이에게 욱 한 날'

by 좋은아침

아이를 낳으면 우아하게 육아를 할 줄 알았다. 나의 모습을 쏙 빼다 닮은 구석이 있는 아이인데 사랑스러운 말로만 아이를 대할 줄 알았다. 정말 그럴 줄 알았다. 아이가 태어나고 어린이집에 가기 전까지 약 30개월 동안 정말 화를 내지 않았다. 화를 낼 이유도 없었다. 아이가 장난을 쳐도 아이가 다 그렇지. 아이가 그릇을 엎질러도 아이가 다 그렇지. 아이가 밥상에서 질질 흘리면서 먹어도 아이가 다 그렇지. 울어도 아이가 다 그렇지 하면서 넘어갔다. 30개월 동안 아이에게 화를 낸 적이 없다. 나의 모든 신경은 말도 잘할 줄 모르는 아이가 안전하게 이 세상을 인식하고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주 양육자인 내가 당연하게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30개월이라는 그 기간에 아이는 세상을 탐험하더라도 나의 제지를 받으면 물러서거나 혀 짧은 목소리로 나를 웃게 했다. 남편 또한 이 기간에는'아이가 다 그렇지'라는 생각으로 아이를 대했다.


이 시기를 넘어서 아이가 의사표현을 하고 자신의 자유의지가 강해지면서 우리는 쾅쾅 부딪히는 순간이 늘었다. 노는 것은 좋지만 정리하는 것을 배워야 하고, 흘리는 것도 괜찮지만 치워야 하는 것을 배워야 하는 순간들이 온 거다. 그리고 '나 먼저, 내 거야'를 넘어서 기다리고 함께하는 것들을 가르쳐야만 했다.


아이를 낳기 전 나는 아이가 천 번을 물어도 화를 내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당연히 내가 생각한 바를 실천할 줄 알았다. 아이가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듯 나의 감정도 널뛰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리고 아이는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다른 것에 바로 흥미를 보여 대화를 이어나가는 방법 또한 알려주어야 했다. 30개월을 넘어선 순간부터 '욱'하는 순간이 올라오는 경우가 많아진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는 지인은 아이를 옆집 아이라고 생각하면 화가 덜난다고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생각해서 아이를 볼 때마다 옆집 아이라고 생각하려 하지만 옆집 아이는 놀러 오면 집으로 돌아가는데 내 아이는 그렇지 않다. 역시 말은 쉽다.


지인의 '옆집 아이론' 대신 나는 화가 날 때마다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자리를 피하는 걸 선택한다. 안 봐야 화가 덜 난다. 오늘 우리 집 개구쟁이는 유치원에 가기 전까지 침대에서 계속 뒹굴뒹굴거렸다. 나가야 할 시간까지 최대한 기다려줬지만 결국 한 번 나의 목소리를 높이니 그제야 이를 닦으러 가고, 세수를 하고, 옷을 입었다. 앞으로 유치원 셔틀을 놓치면 유치원까지 걸어갈 생각이다. 아마도 걸어서는 한 시간이 더 걸릴거다. 차를 놓쳐봐야 힘든 줄을 알 거다.


아이기 때문에 보이는 행동들 속에서 가끔 엄마로서, 그냥 나로서 존중받지 못한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이가 나, 친구, 다른 어른들과의 경험을 통해서 배워나가겠지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그 순간들이 버겁다. 가벼워지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육아를 시작하면서 마음 단련을 이토록 할 줄 몰랐다. 오늘도 숨 한번 크게 쉬고 일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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