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소풍
일요일 아침 7시. 아들이 일어났다. 일요일에는 8시쯤 일어나는 편인데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빠르게 기상을 한다. 일요일 오전 11시에도 집을 보러 부동산에서 사람이 온다고 해서 어딜 가기도, 뭘 안 하기에도 애매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전날에 어디라도 산책을 가자고 약속을 했던 터라 아침도 먹고, 산책을 할 곳을 생각하다가 차를 타고 5분 정도 가면 있는 공원으로 행선지를 정했다.
"아들, 우리 아침은 밖에서 먹자."
"우리 소풍 가는 거야?"
"응, 소풍 가는 거야. 그럼 엄마가 김밥 싸는 동안, 마실 음료수 좀 챙겨줘."
냉장고를 열어보니 얼마 전에 사놓은 김밥 재료가 있었다. 햄, 단무지, 우엉.
김밥 먹는 것도 좋아하고 싸는 것도 좋아하는 나는 김밥에 계란, 상추, 깻잎, 참치, 치즈, 당근, 오이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다 집어넣는다. 하지만 오늘은 다채로운 김밥을 쌀 여유가 없다.
날씨가 덥기에 조금만 늑장을 부려도 더위 속에서 밥을 먹고, 산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있는 재료로 휘리릭 김밥을 싸기 시작했다.
햄을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넣고, 우엉과 단무지의 물기를 뺐다. 냉장고에 넣어 둔 밥에서 김밥 3줄을 만들 수 있는 밥을 퍼서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김이 살짝 올라오는 밥에 맛소금, 친정엄마가 직접 짜주신 들기름을 원을 그리며 넣는다. 마지막으로 엄마가 볶아주신 통깨도 솔솔 뿌리면 고소하고 짭짤한 밥이 완성된다.
맛보다 속도를 올려서 쌌더니 김밥 모양이 평소와는 다르게 이쁘지가 않다. 그래도 하나 잘라 아들과 신랑 입에 넣어주니 김밥 맛이라고 한다. 동시에 만두 여섯 개를 찜통에 넣고 7분간 찐다. 김밥과 만두가 오늘 아침 소풍의 주 메뉴다.
아들은 알로에 주스, 나는 커피, 남편은 물 하나씩 들이키면서 공원 정자에서 도시락을 먹기 시작한다. 운동하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마스크를 벗고 있는 호사도 누려본다.
배도 부르고 산책을 시작했다. 햇살은 뜨거웠지만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해서 좋다.
나는 먼저 앞서 가고 남편과 아들은 뒤에서 졸졸 따라온다. 산책길에 방아깨비가 있어서 남편이 몰고 내가 잡아서 아들에게 보여 주었다. 방아깨비의 두 다리를 잡고 방아를 찧어라고 노래를 불렀지만 방아깨비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계속 잡고 있다가는 방아깨비의 다리가 부러질까 봐 얼른 풀 속에 놓아주었다.
곳곳에 풀과 꽃이 자라고 있다. 이름이 가물가물한 꽃들이 많았지만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은 것은 어쩔 수 없다. 괜히 꽃도 쓰다듬어 보고, 길가에 핀 풀도 발로 손으로 툭툭 건드려 보았다. 꽃 속에 있으니 낭만이 저절로 생기는 듯하다. 한껏 꽃에 취해 쭈그려 앉아 꽃을 만지고 있던 나를 향해 남편이 소리를 지른다.
"자기야, 여기 사람들이 개 산책 많이 시켜서 오줌이 묻어 있을 수도 있어."
신랑의 깔끔스러움(?)이 고맙다. 그래도 오늘은 나의 낭만이 와장창 깨지기에는 꽃이 너무 예쁘다. 나에게 아들에게 관심 많은 신랑. 가끔은 모른 척해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면 신랑은 나에게 말한다.
"혹시 인터넷에 내 욕 쓰는 것 아니지?"
쓰지는 않지만 가끔 마음으로 미워하는 순간은 있다. 늘 달달함이 가득한 결혼생활은 영화 속에서나 존재하는 거 아닌가? 내 가슴에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면 누군가 나도 그런 대상이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뜨끔하기는 하다. 그래도 아무도 보지 않는 내 속에서 뭔들 못하랴...
갑작스럽게 준비한 소풍이 성공적으로 끝이났다. 아들도, 남편도, 나도 좋다고 난리다. 공원 옆에 있는 도서관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으로 땀 식히고, 책도 빌려오니 일요일 오전 참 잘도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