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해도 내 삶이다.

어머니 오시다.

by 좋은아침

"어머니, 쫑(아들 애칭)이 어머니 보고 싶대요. 내려오실 계획 있으세요?"


"한번 시간 확인하고 연락 줄게."


"네."


지난주에 시댁에 갈 계획이었다. 아들의 여름방학 겸, 신랑의 여름휴가 겸. 서울에 살고 계신 시부모님 댁에 가려고 했다. 올라가면 아들이 좋아하는 박물관이나 과학관등을 가려했지만 코로나 확진자 수가 급격하게 증가해서 모든 계획을 취소했다.


취소하고 나니 아들이 할머니를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서 어머니께 연락을 드리니 스케줄을 확인하고 알려주겠다는 답변을 주셨다. 매일같이 할머니 언제 오냐는 아들의 물음에 ‘아직 몰라’라는 같은 답변을 해주는 게 지겨워질 때쯤 어머니께서 토요일에 오신다는 연락을 주셨다.


1~2시 사이에 오시는데 하필 아들의 도서관 만들기 수업이 2시에 있었다. 쫑에게 할머니랑 놀고 싶으면 도서관 수업을 빼먹어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쫑의 대답은 ‘노’였다. 수업을 무조건 다녀오고 나서 할머니를 만나겠다고 답변했다. 몇 번이고 수업을 쉬자고 설득했지만 돌부처도 아니면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를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아이가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어머니가 집에 오는 시간과 우리가 나가는 시간이 엇갈려서 남편에게 어머니가 오시면 문을 열어달라고 말해놓았다. 도서관 수업을 갈 때쯤에 식곤증으로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남편이 못믿어워서 재차 잠들지 말고 어머니 곧 오시니 문을 열어드리라고 했다.


아들을 교실에 두고 나오니 어머니에게서 걸려온 부재중 2통이 핸드폰에 떠있었다. 아니다 다를까 남편이 자느라 지하 주차장 쪽 출입구도 열어주지 않은 것이었다. 역시 나의 촉이 딱 들어맞았다. 당연히 자고 있기에 현관문도 열어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기에 문자로 현관문 비번도 알려드렸다.


수업을 끝내고 집에 오니 역시나 남편은 머리맡에다가 휴대폰을 두고 잤는데도 불구하고 전화 벨소리를 듣지 못했다. 남편은 본인이 예민해서 숙면을 못한다고 하는데, 낮잠을 자더라도 몇 시간이고 푹 자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듯싶다.


어머니가 오시니 최대의 장점은 아들이 엄마, 아빠를 찾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머니는 아이의 눈높이에서 잘 놀아주셔서 쫑이 지겨워할 틈이 없다. 오랜만에 보는 할머니여서인지 쫑은 계속해서 할머니에게 장난을 걸었다. 남들이 보면 조금은 예의가 없게 보여도 어머니가 오늘만큼은 풀어주라고 해서 그냥 놔두었다.


무조건적이면서 수용적인 할머니의 사랑에 풍덩 빠진 아들은 뭘 해도 까르르, 아무것도 안 해도 까르르거렸다. 그동안 아들이 놀자고 해도 ‘나중에, 나중에’를 외쳐댔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들이 아기였을 때는 쉴 새 없이 말해도 지치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서는 조금만 놀아도 하품을 할 정도로 아들과의 놀이에 집중이 안된다. 요즘 운동을 쉬었더니 몸에서 바로 반응이 나오는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몸이 참 솔직해진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작은 자극에도 크게 반응할 정도로 말이다. 10대에는 아무리 놀아도 지치지 않았는데, 마흔을 향하면서는 뭘 해도 급 피곤해지고, 10시 이후까지 깨어있으면 그다음 날은 몸이 한껏 피곤하다. 덥다고 운동을 몇 주 쉬었더니 고스란히 몸과 정신까지 영향이 갔나 보다.


놀이에 푹 빠진 아들을 지켜보면서 요리를 시작했다. 저녁 메뉴는 양념갈비. 아는 동생이 맛있다고 해서 추천해서 사봤는데 생각보다 맛있어서 저녁 메뉴로 정했다. 마트에서 사 온 신선한 쌈채소를 씻고, 콩나물도 무치고, 고기는 남편이 굽고 싶다고 해서 맡겼다. 얼마 전에 고기 굽다가 다 태워서 내가 좀 잔소리를 했더니 고기 한 번 뒤집으면서 남편은 ‘이번에는 안 탔지.’라고 확인을 받으려 했다. 가끔 이럴 때 보면 아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4인용 식탁에 모든 자리가 채워졌다. 쌈, 반찬, 고기를 식탁에 올려놓으니 푸짐한 한 상이 되었다. 밤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니 쫑이 대뜸 할머니는 몇 밤 자고 가냐고 물어왔다. 내일 간다고 하니 왜 두 밤이 아니냐고 떼를 썼다. 어머니도 월요일에 스케줄이 있는지라 머물고 싶어도 머물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쫑의 떼는 안쓰럽게 보이기까지 했다.


대신 어머니는 일요일 2시까지는 놀고 가겠다고 말하며 쫑을 달래 주셨다. 더 놀 수 있다는 말에 안심이 되었는지 쫑은 밥을 먹기 시작했다. 쫑은 밥을 먹으면서 마주 앉아 있는 할머니에게 발장난을 걸고 상추 하나 들어 고기, 밥, 콩나물을 올려서 입을 크게 벌리고 먹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꼭 ‘할머니 나 이만큼 컸어요.’라고 보여주는 것 같았다.


쫑이 뭘 해도 하하, 호호하시는 어머니.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이가 엄마손, 할머니 손이 필요할 때는 자주 봤으면 하는 욕심이 든다.


“어머니, 쫑이 할머니 오시니 엄청 좋아하네요. 어머니 덕분에 맛있게 밥 먹고, 즐거운 시간 보내는 것 같아요. 자주 오셨으면 좋겠어요.”


“아이고 그렇게 말해주니 나도 기분이 좋구나.”


진심으로 한 말에 어머니가 좋으신지 눈가에도 입가에도 웃음이 번지셨다. 집안에 웃음이 가득해지면 이 순간을 박제해 놓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집안을 가득 메우는 웃음소리, 그 웃음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얼굴들.


오늘이 딱 그런 날이다.


작가의 이전글평범해도 내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