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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아침 Oct 17. 2021

평범해도 내 삶이다.

시어머님 오시기 0일 전. 

“주말에 뭐해?”

“아, 시어머니 오신다고 해서 집에 있을 것 같아요.”

“시어머니가 자주 오시는 것 같아. 이 주 전에도 오시지 않았어?”

“이주 전이요?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금요일에 쫑 만들기 수업이 있어서 아는 분들과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주말에 서로 뭐할지 이야기 하다가 시어머니가 오신다는 말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워했다.  

  

어머니가 한 달에 몇 번 오시는지 손가락으로 세지는 않았지만 일 년에 친정엄마를 보는 횟수보다는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댁은 서울이고, 나는 지방에 살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 시어머니의 친정과 멀지 않다. 시외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살아 계시고, 연세가 많으신지라 시어머니가 틈날 때마다 내려오신다.

      

시어머니가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다만 오시면 청소도 새로 하고, 반찬을 장만하고, 혹시나 내가 말실수를 할까 봐 살짝 긴장을 할 뿐이다. 그래도 내려오실 때마다 우리 집에서 1박을 하고 가시면 뒷날은 몸이 조금 피곤하기는 하다.      


오시면 아들도 좋아하고, 어머님도 좋아하는 게 눈에 선해서 그냥 올라가시라고 할 수가 없다. 다행인 점은 어머니께서 음식을 가리지 않으신다. 아침을 빵, 샌드위치, 과일로 간단하게 때우는 우리의 사정을 아시고, 늘 즐겁게 동참해주신다.   

  

‘사 먹어도 좋다.’‘시켜먹어도 좋다.’ ‘안 먹어도 좋다.’라고 말해주시기에 큰 애를 먹으며 음식을 장만하지 않는다.   

   

금요일 저녁에 오셔서 토요일 점심을 드시고 올라가시는 일정이었기에 저녁은 주꾸미 삼겹살, 아침은 치아바타 샌드위치, 저녁은 열무 비빔국수로 준비했다. 어머니께서 친정에서 가져오신 연한 상추에 주꾸미 하나, 삼겹살 한 점을 올려먹으니 꿀맛이었다. 보슬보슬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면 막걸리 한 잔 걸치니, 노곤함과 피곤함 사이에서 내 정신도 붕 뜬기분이었다. 식탁 맞은편에 앉아계신 어머님도 재잘거리는 손자도 보고, 달짝지근한 막걸리 한 잔도 들이키시더니 기분이 좋으신지 연신 웃으셨다.     

 

쫑은 우유 한 잔, 세 사람은 막걸리를 가득 부은 잔으로 건배도 여러 번 해댔다. 쫑은 “짠”이라는 단어로 어른이 된 건지 내심 좋아한다.    

 

어머님이랑은 대화가 잘 된다. 뭐랄까. 내가 가려는 삶의 방향과 비슷한 방향을 향해서 간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돈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귀하게 여기시고, 불필요한 사치보다는 꼭 필요한 사치(?)를 하신다. 흔히 드라마 속의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의 대화보다는 세상 사는 이야기, 어디서 들었던 이야기, 책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나이 듦에 이야기하면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하신다.


“난, 나이 들어서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해도. 너희들이랑은 한 지붕 아래에는 살고 싶지는 않구나. 근처에는 살아도 같은 집은 아닌 것 같아.”     


신랑과 결혼을 할 당시 신랑의 할머니가 살아계셨다. 할머니의 건강상태가 나빠지셔서 어머님은 결혼하고 30년이 지나서야 시어머님을 모시고 사시게 되었다.     


자식들도 다 나가 살고 아버님과 남은 집에서 시어머니가 오시면 말 상대도 생기니 어머님은 내심 어려워도 기대하고 계셨었다. 기대와는 다르게 어머니과 할머니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특히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는 어머님과 다르게 할머니는 세상에 대한 걱정이 가득하셨고, 며느리의 고생은 당연한 걸로 아셨다. 집 이외에는 외출하지 않으시는 할머니 때문에 어머님은 어쩔 수 없이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식사를 준비해드리느라 여행도 못하셨다.     


할머니와의 5년간의 생활은 어머님께 육체보다는 마음의 상처를 깊게 낳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이가 들수록 내 몸과 마음을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집이라는 공간에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렇게나 입어도 눈치 받지 않고, 아무렇게나 먹어도 눈치 받지 않은 그런 곳이 집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거창한 의미가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행위를 눈치 보지 않고 행할 수 있는 곳이 집인 것이다.    

  

그래서 늘 어머님과 앞으로의 10년, 20년을 얘기하면, ‘어머님, 가깝게 살아도 대문만은 다른 집에 살아요.’하고 대화를 끝낸다. 그리고 어머님과 나는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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