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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아침 Mar 16. 2022

계란초밥 맞죠?

‘엄마 오늘 계란 초밥 꼭 만들어줘야 해.’    

 

일 곱살 우리 집 아들. 바쁜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잊을까 봐 끊임없이 상기시켜준다. 참으로 친절하다. 한 달 전쯤 시댁에 갔다가 아들이 고모와 함께 회전초밥집을 다녀왔다. 회를 먹어본 적도 없고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 아들은 고심 끝에 노란 빛깔을 뽐내는 계란 초밥을 사 왔다. 아이가 한입에 먹기에는 큰 사이즈여서 두 번에 걸쳐서 아들은 나누어 먹었고, 사온 계란 초밥 4개를 혼자 다 먹어치웠다. 

    

오랜만에 남이 해준 음식이어서 더 맛이 있었던 것이었을까. 아들은 그 이후로 계란초밥 이야기를 잊을만하면 한두 번씩 했다. 최근에 도서관에서 구도 노리코의 <초밥이 빙글빙글>이라는 그림책을 빌려왔다. 매일같이 보더니 어제는 저녁을 다 먹고 나서 아들이 계란초밥을 내일 먹자고 제안했다. 차를 타고 10분 거리에 회전초밥집이 있어서 저녁을 그곳에서 먹자고 했더니 코로나가 걱정되어서 인지 포장을 해오자고 고집했다.   

   

배달어플에서 검색을 해보니 계란 초밥 5개에 4천 원이었다. 거기다 배달비가 붙으면 최소 7천 원이었고, 최소 주문금액은 12000원이었다. 계란 한 판을 훨씬 뛰어 넘는 가격이었다. 계란 30개로 초밥 100개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유튜브에 ‘계란 초밥 만들기’를 검색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있어서인지 많은 검색 결과가 주르륵 떴다. 가장 상단에 있는 동영상을 클릭하고 아이와 함께 봤다. 자신이 먹었던 계란 초밥이 동영상 속에서 쉽게 만들어지는 것을 보니 아들은 배달이 아닌 직접 만들어 먹자고 제안했다.      


직접에는 아들의 노동을 뺀 오로지 엄마의 노동만 들어있는 게 함정이다. 동영상을 내가 보여주었으니 동영상과 똑같은 계란 초밥을 저녁으로 해주겠다고 큰소리쳤다. 엄마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 때문인지 아들은 일어나자마자 유치원 갔다 오고 나서 계란초밥을 해달라고 여러 번 말했다.   

   

아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이것저것 하다 보니 점심때가 되어서 점심도 먹을 겸 계란초밥에 필요한 계란말이를 준비했다. 동영상 속에서는 계란 다섯 개였지만 계란이 큰 관계로 계란 4개, 설탕 1큰술, 소금 1/3큰술, 우유 5큰술를 넣고 팔이 아플 정도로 저었다. 평소라면 바로 말았을 텐데 동영상에서는 체에 계란물을 바쳤다. 똑같이 했다. 체를 통해 걸러진 계란물의 빛깔이 참 예쁘다. 재료는 준비가 다 끝났다.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살짝 두르고 긴 젓가락으로 기친타올을 잡고 프라이팬을 닦아냈다.    

 

여기까지는 정말 완벽했다. 그런데 막판에 와서 나의 머릿속의 영상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와 섞였다. 계란물을 한꺼번에 프라이팬에 부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다 붓고 나니 떠올랐다. 도톰한 계란말이를 만들기 위해서 동영상속의 인물이 여러 차례에 걸쳐 계란물을 나누어 부었다는 사실이...... 어떻게 되었든 망할 것 같은 계란말이를 살리기 위해서 프라이팬 한쪽만 가스불에 닿게 하고 왼쪽으로 말아갔다. 중간 정도 말 편 뒤로 빼는 형식으로 아직 읽지 않은 계란물을 오른쪽으로 끌어왔다. 엉성하지만 그럴듯한 계란말이를 완성했다.  

    

다 익었겠지 생각하고 도마에 올려놓고 잘랐다. 안 익었다. 다시 익히고 잘랐지만 여전히 익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다 자르고 자른 것을 프라이팬에 다시 올렸다. 아들이 기대하는 것은 노란 계란 초밥일 텐데. 내가 만든 것은 조금 탄 계란말이다. 맛은 있지만 책과 똑같은 계란 초밥을 원한 아이의 반응이 어떨지는 예상이 되지 않는다. 아들아, 엄마는 노력을 했고, 넌  아무말 없이 먹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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