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은아침 Mar 17. 2022

나는 도서관에 간다.

누구나 편안하게 느끼는 장소가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는 첫 번째가 집이고, 두 번째는 도서관이다. 집은 나를 보는 낯선 시선이 없어서 좋다. 오로지 나를 나로 보는 아들과 남편이 있을 뿐이다. 나는 도서관을 집만큼 좋아한다. 일주일에 5번은 도서관에 다닌다. 화요일은 독서지도사 수업, 수요일, 목요일은 개인 공부를 하러, 금요일은 아들 그림책 수업, 조선사 수업, 토요일에는 그냥 간다.  

    

일주일에 기본 다섯 번은  각기 다른 네군데의 도서관에 간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도서관은 몇 해 전에 새로 만들어진 어린이 청소년도서관이다. 역시 신상에 눈이 돌아간다. 1층은 어린이 도서, 2층에는 청소년, 성인 도서가 비치되어있다. 수, 목에는 개인 공부를 하기 위해 도서관에 오면 책은 보지 않고 3시간 정도 허기가 질 때까지 공부만 하다 온다.     


평일에 가면 2층을 지키는 사서 분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거의 없기에 마음 편히 원하는 자리를 골라 앉는다. 선택사항은 많지만 늘 같은 자리를 고수한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에서 오른쪽을 돌면 좌석이 있다. 중간중간 기둥이 있어서 기둥 옆에 앉으면 나의 오른쪽으로 누가 오는지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그래서 기둥 옆자리를 좋아한다.   

  

집에서 공부를 해도 되는데 도서관에서 하면 더 집중이 잘 되는 느낌이다. 은은하게 들려오는 클래식 음악이 집중하는데 도움을 준다. 카페에서 공부를 하면 집중이 잘된다는 글을 본 것 같기도 하다. 가끔 걸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주변을 인식하기를 싫어하면서 공부를 할 때만큼은 인식하는 대상이 있으면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주변이 잘 느껴진다는 것은 내가 집중을 안하고 있다는 건가? 

   

글을 쓰다 보니 도서관을 좋아하는 이유는 편안함보다는 나를 긴장하게 하는 점이 앞선다. 어찌 되었든 내가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기에 나는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  이야기를 하니 얼마 전에 남편이 보낸 문자가 떠오른다. 남편이 카톡으로 수십 장의 캡처 사진을 보내왔다. 두 아들을 좋은 대학에 보낸 한 어머니가 아이들을 매주 도서관에 데리고 갔다는 내용이었다.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도서관에 가는 아들을 둔 터라 남편이 내심 아이의 먼 미래를 생각하며 우리 아들도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깔린 문자였다.   

   

‘어찌 될지 모르는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고,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일에 감사하자.’라는 아주 교과서적인 답변을 남편에게 보냈다. 그 이후로 남편으로부터 도착한 문자는 없었다. 나는 진지한 편이다. 이게 나의 장점이지만 이 점이 나의 단점이기도 하다. 


또, 도서관 하니 떠오르는 대화가 있다. 내가 육아를 하면서 롤모델로 삼는 분이 계시는데 자신이 방황할 때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잡았다고 하셨다.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도서관이 지식뿐만 아니라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고 하셨다. 많은 이들이 책을 읽기 위해, 책에 담긴 지식을 얻기 위해 도서관에 온다. 도서관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면 한 권의 지식을 얻는 것보다 더 가치있지 않을까?


그 이후로 나도 은근 나의 일곱 살 아들에게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놀고, 읽고,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장소가 되길 원하고 있다. 엄마의 숨은 의도를 모르는 아들은 도서관 가는 것을 좋아한다. 정말 다행이다. 나의 피와 남편의 피가 반반 섞여있고, 외모를 보면 아빠의 유전자만을 갖고 있는 우리 아들. 도서관 가는 걸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내일도 나와 아들은 도서관에 간다.  

작가의 이전글 계란초밥 맞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