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대에 찾아 온 사춘기, 그리고 취미의 시작
요즘 회사 일이 많다. 일을 처리하면 줄어들 법도 한데, 계속 쌓이는 것을 보면 지친다. 일에 허덕이다 보니 하나하나 꼼꼼하게 챙기지 못해서 사소한 실수들이 생긴다. 일이 없으면 없는 대로 회사생활이 재미가 없고, 일이 많으면 많아서 불평이 생기는 걸 보면 사람 마음은 간사한가 보다.
입사 후, 회사원 생활은 예상과 비슷하고도 달랐다. 예상대로 단조로웠다. 하루하루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나는 단조로움을 대하는 법을 몰랐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 단조로움은 나를 좀먹었다.
패기와 열정으로 똘똘 뭉친 신입사원이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나는 거대한 시스템의 어느 한끝자락에서 천천히 여물어가야 했다. 회사가 원하는 것은 유능한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 속에서 조화롭게 움직이는 사람이지만, 당시 신입이었던 나는 알 턱이 없었다.
처음엔 열심히 했다. 잘하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다. 무엇보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의미를 찾고 싶었다. 일에서 보람을 느끼면 회사생활이 나아질 것 같았다. 어차피 할 거 조금 더 하려다 10시를 넘기는 일이 잦았다. 일에 대한 감사와 칭찬을 받았지만, 회사생활의 활력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회사 일에 애정을 쏟을수록 마음이 공허했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에 나는 비판적으로 변했다. 누가 조금만 성가신 일을 부탁해도 짜증 내고 방어적으로 대꾸했다. 상대방과 대화가 잘 통하지 않으면 설명을 못한 내 탓은 생각하지 못하고 상대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무시했다. 나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주위가 말썽이라고 생각했다. 불만족스러운 내 마음을 주위 사람들에게 투영했다.
회사에서 마음이 멀어지면서 태도도 변했다. 지각이 잦아졌다. 모든 일에 심드렁해졌다. 관계에는 지켜야 할 선이 있기 마련인데, 마냥 철부지였던 나는 마음 가는 대로 행동했다. 회사라는 생태계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나의 기대감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회사를 원망하면서도, 회사를 떠날 용기는 없었다.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막막했다. 계획도 대안도 없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무모하게 나갈 자신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다닌다는 사실이 마음을 갑갑하게 했다. 나를 아껴주던 몇몇 분들이 애정 어린 조언을 해줬지만, 와 닿지 않았다. 내 상황을 모르면서 마음대로 추측한다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 불만 속에서 지냈다. 스스로 채우는 법을 배우기까지 많이도 흔들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회사생활에서 가장 많이 배운 것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방법이다. 회사생활에서 하루하루 부딪히는 문제들은 겉보기엔 비슷해 보이지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전개된다. 오랫동안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결과만큼이나 과정이 중요하다. 사람들의 주의를 모으고,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고, 함께 결정하고, 그 과정에서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외면하는 사람이 없도록 세심하게 살피는 과정은 예술처럼 정교하다.
한창 예민하던 시기에 함께 일했던 회사 선배들과 동료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답답한 상황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거친 말과 행동이 나왔을 것이 뻔하다. 한마디 해줄 법 한데, 묵묵히 기다려준 배려가 감사하다.
갈등과 스트레스는 살아있다는 증거에 불과할지 모른다. 회사에 다니는 한 갈등과 스트레스는 이따금 생길 것이다. 회사뿐만이 아니라 모든 일에는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는 법이다. 바라건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이 내게 있으면 좋겠다. 파도타기도 계속하다 보면 취미가 되듯이 일상의 문제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