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픈 손가락, 꿈

1. 20대에 찾아 온 사춘기, 그리고 취미의 시작

by 지금

꿈.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단어다.


아주 어렸을 때는 막연하게 간호사를 꿈꿨다. 한창 가지고 놀던 쥬쥬 인형이 간호사복을 입고 있었고, 친구들과 병원놀이를 자주 했다. 당시 아버지는 내 꿈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는지, 대통령이나 의사 같은 꿈을 가지라고 했다. 초등학교에 가서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다. 엄마가 피아노 학원을 했던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 피아노를 잘 친다는 칭찬을 듣는 게 좋았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방송반에 들어갔는데 방송을 만드는 과정이 너무 재밌었다. 방송 PD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중학교에 가면서 국영수의 압박 속에 흐물흐물 사라졌다.


어렸을 때는 꿈이 외부의 압박에서 지켜야 할 대상이었다면, 성인 즈음에는 어떻게든 기한 안에 만들어 내야 하는 과제였다. 대학교 입시 때 원서는 써야 하는데, 쓰고 싶은 과가 없어서 난감했다. 딱히 배우고 싶은 건 없었지만 대학은 가고 싶었다. 결국 좋아하던 선생님이 가르치던 화학과를 썼다. 법대에 가고 싶어서 재수하는 친구, 사진작가가 되려고 미대 입시에 올인하는 친구를 보면 꿈이 있는 게 부러웠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훌륭한 사람을 추구하도록 교육받았다. 초등학교 때, ‘나의 꿈’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면 다들 직업을 그렸다. 엄마, 아빠, 아가씨를 그리는 아이들은 놀림을 받았다. 어릴 때 읽은 위인전의 주인공은 대단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었다. 뛰어난 정치가, 위대한 발명가, 사회운동가, 의사는 나왔지만 평범한 사람은 책에 없었다. 학년이 높아지면서 성적에 따라 주어지는 기회들이 달랐다. 성적표의 숫자로 평가받고 그것에 따라 대우받는 것이 당연했다.


12년 동안 다닌 학교와 자본주의적 성과주의 세계관에 따르면 평범함은 패자를 의미했다. 세상의 가치관에 따라 살던 나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내 모습이 불안했다. 성에 차지 않았다. 그렇다고 확실한 꿈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는 평범하기를 꿈꾼 적은 없었다. 평온한 일상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시선은 회사 밖으로 옮겨갔다. 꿈까지는 아니더라도 특별한 것을 하고 싶었다.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일하면서 무언가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퇴근하고 집에 오는 길이면 어찌나 피곤하던지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평일을 빼면, 금요일 밤과 주말이 유일한 자유시간이었다. 없던 체력을 만들어서라도 평소와 다르게 보내고 싶었다.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뭘 해야 할지 잘 몰랐다. 살면서 무언가를 꿈꾸거나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낸 적이 적었다. 딱히 취향이랄 게 없었다. 재미있고 신나면 나에게 특별한 것이었다. 남들처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술집에 갔다가 노래방이나 클럽으로 밤을 마무리했다. 저녁에 노는 건 회사생활보다 확실히 화려하고 자극적이었다. 일상의 고민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정신줄을 놓고 놀다 보면 현실에 대한 불만도, 미래에 대한 불안도 없었다. 꿈은 잊어버리는 게 여러모로 편했다. 현실이 고달픈 직장인에게 꿈은 외면하고 싶은 대상이었다.


물론 외면하는 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꿈은 있을 때도, 없을 때도 마음의 짐이었다. 꿈이 없을 때는 공허함으로, 꿈이 있을 때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고민했다.


어느 쪽도 장단점이 있다면, 나는 꿈을 찾기로 했다. 꿈이 모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꿈은 그 자체로 삶을 물들였다. 흰 도화지 같은 삶에 원동력과 재미와 동기 같은 다양한 감정을 일으켰다. 인간은 미래를 곁눈질하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독특한 생물이기에, 꿈이라는 삶의 활력소가 필요했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꿈을 평가하지 않고 모았더니 차곡차곡 쌓였다. 꿈은 어린이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20대 중반이 넘어서야 본격적으로 꿈꾸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사소하게는 다음 주 주말에 가고 싶은 맛집부터 10년 후의 모습까지 다양해졌다. 하고 싶은 게 많아졌다.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분명 멋진 일이다. 마음먹은 일을 눈앞의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카타르시스 이상의 의미를 준다. 설사 꿈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꿈을 머금고 사는 것만으로 삶이 풍성해진다. 이루지 못한 꿈에 상처 받을지언정, 하루하루 꿈꾸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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