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용량

by 곱게자란아빠

이른 아침,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니였다.

평생 자식의 삶에 방해될까 늘 조심하던 분이다.

어지간한 통증은 스스로 삼켜내던 분이 떨리는 목소리로 아들을 찾았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병원으로 향하는 내내 어머니는 팔을 움켜쥔 채 낮은 신음을 흘리셨다.

엑스레이 속 어깨뼈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서져 있었다.

의사는 무심한 목소리로 '분쇄골절'이라 말했다.

'분쇄'라는 단어의 무서움이 어머니의 떨림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당장의 입원과 어려운 수술, 뒤따를지 모르는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듣는 내내 머릿속이 하얘졌다.


입원실 한편에 앉자마자 주머니 속 휴대폰이 쉴 새 없이 울렸다.

회사 메신저였다.


"A 프로젝트 건은 어떻게 진행할까요?"

"오후 회의 자료 공유 부탁드립니다."


병실 안은 세상의 소음을 차단한 듯 고요했지만,

메신저는 세상이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는 걸 끊임없이 알려왔다.

동료들은 내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알 리 없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각자의 일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집에 일이 생겨 연차입니다." 짧게 답했다.

"무슨 일 있어요?" 몇몇이 물어왔다.

나라면 어땠을까. 나 역시 같은 질문을 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좀 편찮으셔서요." 거기까지였다.

"잘 간호해 드려요."

형식적인 안부가 오가고 대화는 금세 끝났다.

누구도 더 깊게 묻지 않았고, 나도 더 설명하지 않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위로받고 싶은 마음을 감추게 된 게.

예전 같으면 어머니의 사고 소식부터 의사의 말까지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았을 것이다.

'걱정이네', '잘 돌봐드려'라는 말에 불안을 덜어내고,

그 속에서 위안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문제에 큰 관심이 없다.

깊이 묻지 않는 건, 알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내 불안을 구구절절 털어놓는 게

상대에게는 불필요한 짐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래서 결국, 말을 줄인다.


이런 생각은 나 자신을 돌아볼 때 더 분명해진다.

누군가 회사에서 고충을 토로할 때,

나는 그 감정에 온전히 몰입하지 못한다.

머릿속은 이미 업무와 걱정거리로 가득 차 있다.

다른 이의 이야기가 들어올 틈이 없다.

기대감 어린 눈빛 앞에서 나는 적절한 리액션을 계산한다.

영혼 없는 맞장구는 큰 에너지를 빼앗아 간다.

내가 힘들어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회사에서의 내 역할도 비슷하다.

예전, 과도한 업무에 지쳐 상사에게 투정을 부린 적이 있었다.

현실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기보다

그저 '힘들었겠구나'라는 말 한마디가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이제는 내가 그 상사의 자리에 앉아 있다.

한 팀원이 조심스럽게 고충을 털어놓는다.

나는 '힘들었겠네'라고 말한다.

하지만 해결책을 줄 수 없는 상황에서

그 말은 금세 공허해지고, 나에게는 찜찜함으로 남는다.

그때 내 상사도 같은 기분이었겠구나, 뒤늦게 깨닫는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또다시 입을 닫게 된다.


나는 팀원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한다.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해요."

좋은 상사가 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고백하자면,

내 또 다른 진심은 조금 다른 곳을 향할 때가 많다.

사사건건 묻거나 감정적으로 하소연하는 팀원보다,

묵묵히 문제를 해결하고 결과로 보여주는 팀원을 선호한다.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함께 고민하는 일은

내게 또 다른 감정적, 시간적 비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다.

경험은 깨달음을 주지만,

그 깨달음은 때때로 우리를 모순적인 사람으로 만든다.


내가 유별난 탓일까.

아니면 고민의 무게가 가장 무거운 나이대를 지나고 있어서일까.


언젠가 어깨의 짐이 조금 가벼워지는 날이 오면,

다시 누군가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일 수 있을까.

내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꺼낼 수 있을까.


병상에 누운 어머니의 마른 손을 잡으며

나는 대답 없는 질문을 오래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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