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하우스], [시골집]
유튜브로 검색해서 어떤 매물이 있나 둘러본다.
주소지를 이 동네가 아닌 경북이나 경남의 낯선 곳으로 바꾸고,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을 필터로 걸어둔다
새로고침을 누를 때마다 화면에 빼곡히 들어서는,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촌집들을 들여다보는 것.
이것이 나의 오랜 취미다.
사진 속 한적한 시골집 마당에 편안한 의자 하나 가져다 놓고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맞이하는 상상.
주말이면 가족이나 친구들이 둘러앉아 솥뚜껑 위에 지글지글 삼겹살을 구워 먹는 풍경.
캄캄한 가을밤, 캠핑 의자에 몸을 파묻고 쏟아지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일상의 스트레스쯤은 말끔히 씻겨 내려갈 것만 같다.
몇 년 전부터 불쑥 찾아온 이 촌집에 대한 로망은,
그러나 실천할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아는 이성에게 매번 짓눌려왔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의 문법으로만 살아온 나 같은 사람은 다들 비슷한 꿈을 꿀 거라 생각했다.
하루는 동료들에게 넌지시 물었다.
"시골에 작은 집 하나 두고 주말마다 내려가 살면 어떨 것 같아?"
예상과 달리, 동료들의 눈은 반짝이지 않았다.
"부장님, 그 돈이면 가고 싶을 때마다 깨끗한 글램핑장 예약해서 가는 게 훨씬 이득이에요."
옆자리의 동기는 한술 더 떴다.
"시골집은 힐링이 아니라 노동이야. 주말에 일하러 가는 거라고.
한 주만 안 가도 마당이 정글이 돼서 '이게 내 집이 맞나' 싶을걸."
가장 현실적인 충고는 역시 돈 문제였다.
"그래서, 그럴 돈은 있으시고요?"
그들의 말은 현실이었다.
왜 모르겠는가.
마음에 드는 집을 찾기까지 얼마나 많은 발품을 팔아야 하는지,
주말의 짧은 휴식을 위해 꽤 큰 돈을 땅에 묵혀두는 것이 지금의 나에겐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안다. 알지만,
'상상하고 꿈꾸는 것만으로도 얼마간의 위안을 얻을 수 있지 않냐'고 속으로 항변했다.
그날 저녁, 퇴근 후 안방 암막 커튼을 걷었다.
창밖으로 집 옆 고등학교의 텅 빈 운동장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해가 저문 운동장은 인적 없이 고요했고, 조명탑 불빛만이 어둠을 지키고 있었다.
뻥 뚫린 풍경이 꽤 괜찮은 뷰를 선물하고 있었다.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없다면, 차선의 만족이라도 찾아보자.'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창고에서 몇 년째 먼지만 쌓여가던 캠핑 의자와 작은 테이블을 꺼내 창가에 펼쳐놓았다.
삐걱이는 의자에 몸을 맡기자, 오랜만에 맛보는 안락함이 온몸을 감쌌다.
회사가 복지라며 제공했던 100만 원이 넘는다는 인체공학 의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몸과 마음을 동시에 무장해제시키는 편안함이었다.
멍하니 창밖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가을이 있었다.
이게 힐링이구나.
어쩌면 나는 너무 먼 곳에서만 나의 로망을 찾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솥뚜껑 삼겹살을 구울 수는 없겠지만,
이곳에서도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고 창문을 열면 계절 따라 달라지는 바람의 온도도 느낄 수 있다.
나의 가장 가까운 세컨드하우스,
운동장 뷰를 가진 창가의 이 작은 촌집이 오늘 문을 열었다.
오늘부턴 부동산 앱이 아니라 이 창가로 퇴근한다.
나만의 가짜 촌집, 운동장 뷰의 소박한 세컨드하우스가 생겼다.